꼴레오네의 수필집 #028
당연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감정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무병장수 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내 많은 추억이 담긴 할머니댁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만 같아 허전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나의 두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내 인생에서 할아버지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유족으로 참석한 장례식은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일요일 오전, 늦잠을 실컷 자고 있을 무렵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할머니 몸이 편찮으신 것은 가족 모두가 인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지라, 그리 갑작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게 버스로 네 시간을 달려 고향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서야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완장을 찼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꼬박 삼일 간의 장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장례식장은 바빴다. 고인의 친인척이 많을수록 그렇겠지만, 할머니는 일곱 남매를 키우셨고 이미 증손주까지 있기에 조문객도 그만큼 많아 더욱이나 바빴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여 방명록 작성을 부탁드리고,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면 음식이나 술을 나르는 정도의 일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반듯하게 예의를 차리고 있어야 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피로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절을 하고 사람을 맞아야 하는 상주는 얼마나 피로하고 피곤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가장 슬퍼할, 가장 감정적으로 힘든 사람이 상주일 텐데 정작 상주는 단 한순간도 쉬지 못했다. 왜 유가족은 장례식장에서 슬퍼할 수 없을까.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겠지만,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장례식 문화나 관습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의견을 꽤나 접했던 것 같다. 물론 대부분 어쩌다가 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떠돌아다니는 글들이었고, 보통은 젠더 관련된 의견이었다. 왜 여자가 상주를 하지 못하느냐, 고인의 관이나 유골함은 남자만 들게 하느냐 따위의 의문이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많은 제법과 문화도 달라지거나 소멸된다. 하지만 여전히 장례식만큼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장례지도사는 우리 가족을 보고 통곡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하라고 하니까 했다. 내가 지켜본 장례 절차라는 것에서 많은 것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나 또한 직접적으로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래야 하니까 그게 맞다고 하니까 내가 잘 모르니까 일단 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대부분은 조문예법만 배울뿐, 유가족으로서 장례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례 절차나 문화에 지식도 관심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겪어보지도 그럴 일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인생에서 몇 번 없는 이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장례식은 너무 바쁘고 고되어서 상주를 포함한 유가족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발인까지 걸러는 서너 일의 시간은 참으로 바쁘고 정신이 없다. 잊고 살던 사람들을 마주해야만 하고 인사를 건네야 하고 할 도리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장례 문화가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전해 내려 온 것이 아닐까. 다들 장례를 치르는 법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고 전통관습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장례지도사-라는 직업도 있는 것 같다. 인생에 유가족으로 장례식을 치를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만 하고 넘어가는 정도로 다들 여기는 것 같다. 아무도 관심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장례문화는 바뀌었으면 한다.
하지만 나도 노력할 이유가 딱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