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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ul 01. 2019

J에게

너의 꿈을 응원할게-2019.6.30. 일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진작 하라고 말할 걸.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 임박해서 발을 들이게 하다니. 남들은 여유롭게 걸을 때 J는 헐레벌떡 뛰어가야 한다. 애석하게도 곧은길을 두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3년 전부터 요리사가 되겠다던 J를 뜯어말렸다. J는 아직 어리고  J의 다양한 잠재력을 믿고 싶었다. J는 고집이 조금 세긴 해도 부모가 하는 말에 적어도  듣는 시늉은 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요리야 말로 자신이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 결론 내렸다.


올해 J는 고3이 되었지만, 공부보다  친구들과 복잡한 관계에 얽혀 스스로 방황했다. 적잖이 부모 심장을 들었다 놨다 했고, 우울한 사춘기를 일삼던 것을 생각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반가운 소식이다. 지금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이 3년 전에는 왜 안 됐을까?


요리사가 되겠다는 J를 반대했던 이유는 요리사들의 고충잘 알기 때문이다. 뜨거운 불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남들 밥 먹을 시간에 밥을 지어야 하는 입장이고, 밤늦은 퇴근과 휴일 근무 등 외부 세계와 고립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매번 작품 같은 레이팅을 연출하는 우아함보다, 밀린 주문에 기계적으로 똑같은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단조로움이 있으니, 요리사에 대한 환상은 버리고 현실을 바라보라고 했다.  J가 몸이라도 덜 고단한 직업을 선택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했다.


J가 말했다.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 줄 때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것 같아."


아마 모든 요리사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J의 말에 나도 이런 답을 했다.


"나는 네가 직업인으로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고 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요리는 취미로 하는 게..."


요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의욕이 앞선 J가 오늘 점심을 준비했다. 냉장고에 재료가 별로 없어서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했다며, 스테이크와 비빔국수 그리고 라이스페이퍼를 준비했다. 얼핏 보면 미스터리 한 조합인 것 같지만, 맛은 꽤 근사했다.  뜨거운 물에 담갔다 건진 라이스페이퍼를 넓게 편 뒤  잘 익힌 스테이크 한 조각을 먹기 좋게 썰어 올리고, 그 위에 비빔국수 한 젓가락과 새싹 채소를 올린다. 이들을 돌돌 말아 땅콩소스에 찍어서 먹으니 월남쌈 맛도 나고 고기 얹은 비빔냉면 같기도 했다. (이 주제로 글을 쓸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찍었을 텐데, 아쉽다.)


J가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는 일이 즐거워 보여서, 나는 괜한 망상을 해 본다. 휴일 식단은 J가 준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몇 끼만 더 시키면 J도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 같은 같지만, 뭐든 자기 방식대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솜씨를 보고 있으면 대견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며칠 뒤 J는 신촌에 있는 요리 학원에 첫발을 딛는다. 처음 도전하는 것은 '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이다. 주 3회 방과 후 저녁 수업을 들으며 준비한다. 뚜렷한 자신의 관심 분야가 생기면서  J의 끝없는 방황과 무기력한 일상에 활기가 돈다. 며칠째 J의 표정이 밝다. 불거져 나왔던  드름이 가라앉아 피부도 깨끗해진 느낌이다.


혹여 지금 선택한 길이 최선이 아닐지라도, J가 노력해서 걸어간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J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J의 손맛 담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지금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언젠가  다시 그 자리를 서성이게 될 것이다. J! 너는 후회나 아쉬움 없는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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