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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Sep 07. 2019

비가 야속할 때

상암 월드컵 공원 수변 무대, 오페라 <마술피리>

2019.9.7. 금요

태풍 '링링'의 어감은 왠지 어깨춤이라도 추게 할 것 같지만, 링링의 정체는 태풍이다. 잠시 망각한 사이 링링은 이번 주간 날씨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른다. 가을 하늘을 보여주다가도 정색하며 비를 쏟아내고, 비가 개는가 싶으면 장난처럼 슬슬 흩뿌리기를 반복한다.

오늘 저녁은 제발 변덕을 부리지 말고 조금만 참아줬으면 했다. 기다리던 야외 공연인 오페라 <마술피리>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 8시가 가까워지자 조금씩 비가 내리다가 다시 그쳤다. 사회자의 기분 좋은 목소리와 함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등장했는데, 단원들이 악기 조율을 하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또 비가 내렸다. 현악기들은 비를 맞힐 수 없다며 단원들 전체가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비가 잦아들어서 공연은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연주에 맞춰  < 마술피리>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어렵게 무대가 열리고 주인공 타미노 왕자와 밤의 여왕의 시녀들, 새잡이 파파게노까지 등장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밤의 여왕한테 타미노를 데려가기 직전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밝은 조명에 비치는 빗줄기가 생각보다 굵었고,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내는 부스럭 소리,  입고 있던 비옷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배우들도 지휘자도 비를 맞아가며 열연했지만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 오는 소리와 함께 한밤의 오페라를 보려던 기대는 링링 때문에 날아갔지만, 친구와 함께 간직하게 될 추억이 생겨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찾아간 하늘 공원 밤 풍경과, 비 오는 공원 산책로를 우산 쓰고 걷는 것도 좋았다. 행사 준비를 위해 끝까지 노력한 진행자들한테 아낌없는 박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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