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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ul 11. 2019

어쩌다 한 번 이런 곳에서

2019.7.5. 금ㅡ롯데호텔 ,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15년 지기 두 명과 매월 5만 원씩 모아  모임을 하고 있다. 별한 목적은 없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느긋한 점심을 먹는다. 모임 횟수는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서로 바빠 종종 건너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회비가 쌓이니 다음 모임에서 꼭 이런 얘기가 나온다.


"우리 회비도 많은데 비싼 거 먹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평소 찜해둔 장소를 추천한다. 우리 중 큰언니가 대부분 장소를 추천하고 머지 둘은 무조건 따는 편이다.


 이번에 언니가 롯데호텔에서 먹자고 했을 때, 호텔 뷔페로  생각하고 솔직히 망설였다. 뷔페는 비싼 돈 내고 들어가 봤자 많이 먹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값진 요리만 쏙쏙 골라 그럴듯하게 접시에 담아 올 재간도 내겐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뷔페가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피에르 가니에르'라는 프랑스 요리사의 이름을 건, 미슐랭이 주는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이라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나 싶어 말 나온 김에 바로 가기로 정했다.

롯데호텔 로비와 엘리베이터 앞

7월 5일 금요일 낮 12시 30분, 롯데 호텔 3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번쩍이는 대리석 벽과 화려한 샹들리에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었다. 내부로 들어가는 은 마치 비밀통로처럼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보랏빛 샹들리에 은은하게 번져 나오는 조명 덕분에 아늑한 느낌이 들었고, 넓은 통유리 너머로 시내 전경과 북한산이 펼쳐져 있었다. 테이블 간격은 널찍널찍했고, 몇 테이블씩 공간을 분리하여 각 공간마다 분위기와 용도를 달리해 놓은 듯했다.


드디어 음식 주문을 하고, 어떤 음식이 나올지 상상하며 기다렸다. 손님이 많지 않아서인지 음식 나오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식전 빵도 맛있고 애피타이저로 나온 음식은 너무 작고 예뻐서 한 입에 넣기 아까웠다. 마치 소꿉 장난하는 것도 같고 진열대 위에 올려놓는 소품 같기도 했다.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한입씩 맛을 보았다.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어보려 했는데 급한 성미 때문에 쉽지 않았다. 맛을 탐색하기도 전에 음식이 식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화려한 겉모습에 취해 그 속을 알아볼 수 없는 느낌이랄까. 떤 재료로 만들었다고 밝히지 않으면 잘 모르고 먹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문한 메인 메뉴는 제철을 맞은 민어 스테이크와 송아지 사태 스테이크였다. 양이 적어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맛있는 빵으로 이미 속이 든든해진 터라 나찮았다.

디저트도 애피타이저처럼 작고 앙증맞은 모습다. 맛도 맛이지만 눈이 가장 많은 호사를 누린 시간. 프랑스 요리에서 디저트가 차지하는 비율높은만큼, 메인이 오히려 묻혀버린 것 같다.  식 전후로 단맛이 강한 음식들이 중복되다 보니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커피까지 시고 나니 식사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걸렸다. 즐거운 식사를 위해 충분한 시간이었다.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라 예의상 30분 전에 일어났다.

우리 공통적으로 말한 음식 평은 이렇다. 일단 음식 하나하나는 맛있었지만, 뭔가 메인이 너무 약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가성비 운운하는 우리가 이상하겠지만, 점심 메뉴로 12만 원을 내고 먹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아쉬움이 남다. 한 번은 괜찮지만 두 번 방문은 고려해 봐야겠다는 것.


이곳은 비즈니스를 위해, 여심을 사로잡고 싶은 남자들, 음식 사진 찍는 게 취미인 사람들, 기념일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로고가 새겨진 수제 초콜릿을 펼쳐 보이며 맛 보라기에, 한 개 먹었는데 맛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 주며 오늘 이런 곳에 다녀왔노라 하고, "다음에 기회 만들어서 데려갈게."라고 말했더니 작은 아이가 다.


"안 데려가도 돼. 사진 보니까 먹을 게 별로 없어서 가고 싶지 않아. 엄마가 먹은 음식 전체를 한 접시에 다 쓸어 담아도 배 안 부르겠어!"


하긴 나도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는 생각에 저녁은 나가려 했는데, 배꼽시계는 어김없이 울려댔다.  결국 친구와 함께 양꼬치에 칭다오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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