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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Oct 15. 2019

달리기라도 해야지

영화,<아워 바디>

얼마 전부터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번도 제대로 달려본 적 없다가, 한강변의 야경을 보며 달린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마침 이 무렵 독립영화 한 편을 접하게 되었는데 제목이 '아워 바디'였다. 독립 영화들은 상영관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찾아간 상영관은 충무로 대한극장이다. 관객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영화에 몰입하기 좋았다.


고시 공부로 청춘을 다 바친 주인공 자영은 어느 순간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초췌한 얼굴, 질끈 묶은 머리가 너저분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입은 옷이라곤 헐렁하고 추레한 데다 앉아서 공부만 해서 투덕투덕한 얼굴에 통통하게 살이 찐 몸. 자영은 8년이 지나도록 결판 나지 않는 시험을 붙잡고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영의 눈길을 끈 사람은 운동선수처럼 잘 달리는 현주다. 동갑내기 현주를 만나면서 자영의 삶도 생기를 되찾는다. 신발장에서 꼬질꼬질 때 묻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무작정 현주 뒤를 따라 달리다, 점점 현주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어느덧 현주의 달리기 동호회에 합류하게 된다.


달리기를 하면서 오랫동안 잠자던 자영의 근육이 살아났다. 군더더기 살들은 빠지고 그 자리에 단단한 근육이 붙는다. 자영의 신체에 찾아온 변화만큼 심리적으로도 큰 변화가 온다. 제 구실 못 한다고 먹던 밥그릇마저 엄마에게 빼앗겼지만, 자영 스스로 돈을 벌어 월세를 낼 수 있게 된다. 직장 내에서 나이가 많아 눈치 보며 주눅 들 때도 있지만,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자기 길을 걷는 자영이다.


자영은 자신과 다른 현주의 삶을 부러워하지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현주를 잃게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현주도 그녀의 삶의 이면에 아픔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영화의 속도는 느리다. 그래서 중간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여백이 있어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아픈 청춘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복잡하고 답답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할 말은 많은데 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끝이 깔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청춘의 자화상이 견뎌내야 할 현실이 복잡다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려서 지독히 병약한 아이 었다. 체육시간에 나무 그늘에 앉아 친구들의 움직임만 감상하곤 했다.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머리가 핑 돌아 쓰러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운동을 해야 할 시기에 못하고 자라서 운동신경이 많이 무딘 편이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나이 들수록 점점 내 몸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즐겁다. 걷고 뛰고 달리고 첨벙 대고 휘두르고... 무얼 하든 호기심이 생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양하게 즐기면 내 삶이 풍요로워지리라 믿는다. 단 건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우리의 몸! 우리 몸은 정직하다. 건강한 몸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날씬한 몸보다 살이 좀 붙더라도 건강한 몸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점점 사라져 가는 근육을 몸에 붙여두기란 얼마나 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달리고 싶어 질 것 같다. 나 역시 달리고 싶어 졌으니까.


*사진 출처-네이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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