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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Oct 20. 2019

여고 동창들과 함께 한 시간

2019.10.18.금ㅡ대구 1박2일 여행

봄가을에 한 번씩 갖는 1박 2일 모임이 있다. 풋풋한 여고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4명이 하는 모임이다. 서울, 인천, 대구, 포항에 각자 살고 있어서 모임 장소를 정하기 쉽지 않다.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난 적도 있고, 포항에서 만나기도 하고, 대구에서도 만나기도 했다. 이번 모임은 다른 장소를 알아보다 여의치 않아서 또다시 대구로 정했다.

금요일 이른 퇴근을 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동대구역에서 만났다. 올봄에 울산에서    만난 뒤로 6개월 만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 봐도 어제 본 듯 낯설지 않고 친숙한 얼굴들이다. 우리는 분명 중년의 아줌마들이 되었는데, 친구들의 겉모습이나 목소리, 말투, 심지어는 습관과 가치관 등  많은 것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변하지 않아서 좋은 점이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서는 조금 변해도 좋을 것 같은 부분도 있었다.

친구들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 성실한 직장인들이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간다.   여자 넷이 모여서 음주가무를 즐기기보다, 얼굴 맞대고 밤새 이야기하다 스르륵 잠든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 하는 나와 달리 셋은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어젯밤에 하던 이야기들을 이어 또 종알종알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눈도 못 뜨고 뒤척이는 내 귓전에 어렴풋 이야기가 스민다. 무슨 얘기가 저렇게 끝이 없을까. 올봄에 들었던 얘기를 또 듣기도 하는데, 아무렴 어떤가. 다들 어딜 가서 이렇게 쏟아내겠나 싶어 그저 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아점을 해결하기 위해 서문시장 내에 갈비찜 골목으로 갔다. 갈비찜이 유명하다고 해서 무작정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어느 집으로 들어가야 할지 갈등이 시작됐다. 골목 첫 번째 집에서 호객행위를 해서 붙잡힐 뻔했는데,  뿌리치고 나와 한 집 지날 때마다 호객행위는 이어졌다. 결국 줄 서서 대기 중인 어느 집 앞에서 우리도 줄을 섰다. 단순히 사람 북적이는 집이 맛집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다른 집은 한산한데 우리가 줄 선 집은 우리 뒤로도 꽤 줄을 섰다.

식당은 길게 이어진 테이블에 낯선 손님들이랑 한 테이블을 사용하듯 다닥다닥 앉아야 할 만큼 좁고 불편했다. 가방 하나 내려놓을 곳이 없어서, 양쪽  발 등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밥을 먹었으니 말이다. 과연 맛은 어떨까. 허기진 상태라서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맛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우선 양념에서 조미료 맛이 너무 강했고 간이  짠 편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긴 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맛은 분명했다. 그 자리에서는 못 느꼈는데, '가격 대비 나름 괜찮은 음식'이라는 조건은 달아주고 싶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갈비찜 가격을 생각해 보면, 청국장 포함해서 7~8천 원이란 가격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푸짐한 편이다. 도대체 나는 어떤 갈비찜과 비교를 하는 건지, 상상만으로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다음 찾아간 곳은 '김광석 거리'였다.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좁다란 골목길에 김광석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조성해 두었다.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무척 붐볐지만, 그 거리에서 마주치는 해맑은 미소와 웃음소리가 있어 더 기억에 남는다.

가을이라는 계절과 김광석의 음성 그리고 노랫말이 참 잘 어울렸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감성에 젖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돌아와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김광석 노래를 듣고 있다. 잊히는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한 작은 거리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억 속으로 데려간다.

오후로 시곗바늘이 넘어가고, 대구의 핫플레이스  동성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성로는 사람들이 많아서 활기가 넘쳤다. 주말 오후라 더 붐비는 거리를 걷다가 타로 골목으로 들어갔다. 재미 삼아 타로를 봤는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누구나 다 해 줄 수 있는 이야기, 내가 아닌 너를 적용시켜도 말이 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구나였다. 그야말로 재미로 보고 돌아 나왔다.

저녁 5시 40분 열차를 타기 위해 다시 동대구역으로 갔다.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해 준 가족들을 위해 대구 명물을 기념으로 사 가자고 협의했다. '대구 근대 골목 단팥빵'집에서 각자 한 박스씩 사서 손에 들었다. 이 집 단팥빵은 팥도 팥이지만 구운 호두가 제법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기다리는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열차에 올랐다.

우리는 서울로 인천으로 대구로 포항으로.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갔다. 내년 봄 벚꽃 필 무렵 다시 만나자고 기약하며.

*서울로 올라오는데 열차가 25분 정도 지연되었는데, 알고 보니 앞 열차에 너구리가 부딪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동물의 상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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