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나는 교복차림으로 등굣길 버스에 오르던 참이다. 요금 지불을 학생용으로 했더니 대뜸 버스기사님이 학생임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네모난 이름표를 내밀며 이름표가 있지 않냐며 말했더니, 그 이름표 하나로 학생인 걸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네이버 검색창에 우리 학교 이름을 찍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검색 실패. 또다시 검색어를 입력하는데 학교 이름 몇 글자가 잘 처지지 않았다. 네이버가 아닌 다른 검색 기능을 마구 눌러봐도 우리 학교 정보는 찾아낼 수 없었다. 학교정보 검색 후 학교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건 다음 내가 정말 그 학교 학생임을 입증해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승객들 어느 누구도 왜 출발하지 않느냐며 말하지 않았고, 마치 화면이 정체된 것처럼 모든 시선이 내게 고정되어있었다.
고집스러운 기사님만 나를 의심하며 투덜댔다. 다급함과 절망감에 가득한 채 내 손가락은 자판을 쳤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전히 학교정보 검색은 되지 않고 주변 연관 검색어에 우리 가족이야기가 나와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비극에 대한 정보였다. 나는 잊고 있던 슬픔과 고통이 떠올라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인상을 찌푸렸던지 미간에 주름이 꼿꼿하게 잡힌 것 같았다. 아! 꿈이었네 하고 정신이 돌아왔는데도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인데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잠 자기 전에 읽었던 책에서 주인공이 기묘한 꿈에 대해 밝힌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서 같은 집에서 잠을 자던 후배가 자신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왜 그러냐고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묻고 싶은데 입이 굳게 닫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눈을 돌려보니 그 후배의 육체는 거실 쪽에서 자고 있는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또한 후배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자기 전에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았다. 거기에서 남편 이태호가 아내 지선우의 과거 아픈 상처를 들춰내어 고통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지선우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며 그 이야기는 지선우에게 평생 트라우마로 따라다닌다.
아무래도 책 내용과 드라마 내용이 뒤섞여 나의 꿈속에서 재현된 것 같다. 나는 여고생도 아니고(심지어 나는 여고생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가족사에서 비극적인 트라우마도 없다. 이런 꿈이 바로 가위에 눌린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거나 딱히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는데, 이런 꿈을 꾸다니 그것 참 기묘한 일이다. 코로나 영향으로 집에 오래 갇혀있어서 생긴 부작용은 아닌지.
아무튼 꿈을 꾸는 바람에 잠이 일찍 깨서 일요일의 늦잠은 면했다. 식구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치기 전에 미리 일어나서 밥을 준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