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남이 이야기
내가 기남이를 알게 된 지도 벌써 20년이다. 기남이 나이가 지금 마흔이니까, 스무 살의 기남이를 내가 처음 본 거였다. 참고로 기남이는 고흥에 살고 있는 친척 조카(남자)이다.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 이등병처럼 짧게 깎은 머리카락, 보통 키에 보통 체격. 겉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특별한 게 없어 보이지만, 누구든 기남이 앞에 바투 다가가 보면 기남이가 조금 특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사람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니 말을 잘하려들지 않는다. 은근 고집이 세서 불퉁거리는 성격이지만 쑥스러운 듯 잘 웃기도 한다.
부모님들은 기남이가 초등학생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먹고사는 일이 급급해서 치료받는 시기도 놓치고, 성장기에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저렇게 되었다며 부모 된 도리로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결국 기남이는 고등학생 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축사 관리를 맡겼다. 처음에는 돼지랑 소를 키웠는데 지금은 소만 키운다. 20마리도 넘는 소를 돌보는 일에 기남이는 정말 지극 정성이다. 규칙적인 하루 일정대로 칼같이 시간 지켜가면서 사료 주고, 똥 치우고, 청소하는 일을 혼자서 다 한다.
기남이에게도 친구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기남이 보다 스무 살이 많은 형님이 시골에서 유일한 친구라고 했다.
나도 고흥 갔을 때 한 두 번 본적 있는 사람인데,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사람 좋아 보였다. 기남이가 부모님 빼고 가장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 기남이에게 그 형님은 친구이자 가족 같은 존재이며, 기남이 인생 멘토이며 은인인 것 같다.
작년부터 나주에 살고 있는 초성씨랑 양가 부모님 허락하에 교제를 시작했다. 초성씨는 기남이 보다 어리지만 지적 수준이 더 높고 건강하다. 초성씨 부모님이 나주에서 배농사를 짓는데, 초성씨도 일손을 거들었다. 처음부터 결혼을 시키자고 집안끼리 얘기가 돼서 서로 만나보게 했는데, 기남이가 초성씨만 나타나면 도망을 치는 바람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중 형님의 활약이 빛을 발하게 되면서 지난달에 드디어 결혼에 골인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남이에게 연애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일일이 데이트 장소를 물색해서 기남이 커플을 자가용으로 데리고 다녔다. 손잡아라, 키스를 해라, 안아줘라. 사랑한다고 말해라... 등등.
형님은 결혼식 사회를 보는 건 물론이고, 요즘 커플들의 연애사 동영상처럼 똑같이 편집해서 예식장 분위기를 띄웠고, 심지어 형님 부부(형님은 결혼해서 다 큰 딸이 둘이나 있다.)가 제주도로 기남이 신혼여행도 데리고 갔다.
기남이 부모님은 건강이 안 좋으시고, 운전도 못한다. 아무리 같은 동네 사람이라고 해도 내 부모, 형제도 하기 힘든 일을 그 형님은 행복한 표정으로 행하고 있었다.
예식 진행 중 기남이 커플영상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던 배경음악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기남이 커플한테 딱 맞는 곡을 정하다니, 형님의 관심과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알면 알수록 여운이 오래 남는 사람이다. 다음에 고흥에서 형님을 만나게 된다면,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 싶고 기남이 이야기도 더 들어보고 싶다.
봄꽃이 만발한 고흥집에서 기남이 커플은 여느 신혼부부처럼 깨를 볶으며 살고 있다. 천생연분은 저절로 만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노력으로 잘 만들어지기도 하는구나 싶다. 기남이 부부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아가길 빌어본다.
마지막으로 동요 <모두가 꽃이야> 노랫말을
따라 흥얼거려 본다. 저 노랫말처럼 우리 모두는 꽃이다. 저마다의 향기와 빛깔을 가진. 다만 언제 어디서 피었는지 다를 뿐!
모두가 꽃이야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