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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제주 여행

엄마와 딸들의 폭풍수다를 위한 시간

by 라향

그동안 우리는 수다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4월 냐짱 가족여행 이후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서로에게 이런저런 일들이 제법 일어난 것 같다. 속 깊은 얘기도 좀 들어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쉬다 오기로 했다. 여자들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어제 딸들이랑 함께 제주에 왔다.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올 줄 알았는데, 흐렸다 맑았다 살짝살짝 비가 내리는 정도다. 숙소만 정해놓고 어디 가서 무얼 할지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계획이 계획인 여행이다.


앙증맞은 렌터카를 타고 해안도로부터 쭉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골목길도 꼬불꼬불 들어가 보고, 그림처럼 예쁜 풍경이 보이면 차 멈추기,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기도 했다.


장롱면허인 작은 딸이 제주에서라면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운전석을 넘보기에, 차 없는 길에서 잠깐씩 주행 연습도 시켜줬다. 희한하게 한산하던 도로에 왕초보가 핸들만 잡으면 어디선가 차들이 줄줄이 몰려드는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지만 별일 없이 잘 넘겼다.


우리들의 맛집 탐방은 어느새 먹방이 되어 버리고, 한잔 두 잔 마시기 시작한 술은 이내 술배틀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나이 많은 엄마가 젊은 딸들을 이길 수 있겠냐만, 그래도 새벽에 잠들 때까지 나도 살아남았다. 취중에 참 많은 수다를 떨었다. 덕분에 속마음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번 먹방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식은 말고기랑 초당옥수수다. 말고기는 택시기사님의 추천으로 찾아간 식당에서 먹었는데, 말뼈진액부터 말사시미, 말육회, 말갈비찜, 말만두, 말 생구이, 말곰탕까지 코스를 먹었다. 처음 접하는 음식이라 망설였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코스였다. 소고기라고 속여도 모를 만큼 비주얼이나 맛이 흡사했다. 딸들은 말고기만의 특이한 향이 있다는데, 난 잘 모르겠고 맛있게 먹기만 했다.


초당 옥수수는 지나가다가 ‘초당 옥수수 직거래 장터’가 열린 곳을 발견해서 우연히 맛보게 되었다. 갓 수확한 신선한 옥수수를 망에 10개씩 넣어 팔고 있었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 사기 부담스러웠다.


일반 옥수수랑 달리 초당옥수수는 당도가 높아서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는 얘기에, 그 맛이 어떨까 너무 궁금했던 터였다. 판매하시는 분께 여행객인데 옥수수 한 개만 팔면 안 되냐니까 껍질을 쓱쓱 벗겨낸 옥수수를 맛보라며 그냥 주셨다. 친절을 베풀어 주신 덕에 우리 셋은 생 옥수수를 차례로 맛볼 수 있었다. 와! 세상 신기한 옥수수맛이었다. 씹으면 톡톡 터지는 게 어찌나 달달한지. 캐리어에 담을 공간 따위는 잊은 채 한 망에 만 오천 원 주고 덥석 사버렸다.


오늘도 해가 넘어가는 시간. 숙소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감상하는 중이다. 낮에 먹은 것도 소화가 됐으니 이제 슬슬 마지막밤을 즐겨볼까 한다. 오늘은 회랑 딱새우를 포장해 왔다. 편의점에서 사케랑 한라산 소주도 사 왔다. 술배틀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서 2차 폭풍수다를 떨고 싶다. 게임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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