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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Sep 15. 2017

말과 글의 힘

일상의 메모No.21

여행하던 중에 ‘인터넷 맛집’ 검색을 해서 찾아간 식당이 있다. 우리 일행은 인원수가 많아서 몇 개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홀서빙하는 아주머니께서 공기밥과 밑반찬을 테이블마다 일일이 나눠주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로울 것 같아 “그냥 두고 가세요. 우리가 옆으로 전달할 게요.”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극구 사양하며 테이블마다 그냥 자기가 직접하겠노라 했다. “블로그에 올릴 때 일하는 아줌마가 서빙도 제대로 안 하고 손님한테 시켜 먹는 불친절한 직원이라 할까 봐 무서워서 그럽니다요!” 뼈 있는 한마디였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던진 아주머니의 말에 모두들 웃으며 넘겼지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블로거들이 무서워서 일하는 게 너무 피곤하다는 맛집 아주머니 말처럼 사실 그대로 전달만 해도 좋겠는데, 있는 말 없는 말 보태서 나쁜 말로 도배를 해서 문제라고 했다.


항간에 240번 버스 운전기사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아이 혼자 내렸으니 세워 달라.”는 엄마의 요청을 무시하고 계속 달린 '미친 기사 양반'이라는 비판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부터다. 목격자들의 진술과 언론이 합세해서 순식간에 기사 한 사람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순식간에 인터넷 곳곳에 도배된 기사를 나도 관심 있게 읽어 보았었다. 악성 댓글이 판을 쳤고 나 역시 그 말들이 진실이라 여기며 의심하지 않았다. 버스 운전기사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과 서울시가 개입하게 되었고, 감시카메라 판독,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고 한다. 아이 혼자 내린 것도 몰랐고, 엄마가 차를 세우라고 외쳤지만 안전을 위해 바로 정차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언론 발표가 나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인터넷은 버스 기사를 옹호하는 글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모법 기사로 수차례 상을 받았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충격과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에는 왜곡된 진실을 처음 올린 사람은 물론, 악성 댓글을 단 사람들이 비난의 타켓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죽일 놈이 되어있다면, 당사자가 겪어야 했을 현실은 생지옥이었을 것이다.

240번 버스 기사처럼 ‘마녀사냥’ 당하는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보아왔다. 소문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습성과 인터넷이라는 무서운 매체가 만나, 순식간에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아무런 제제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실이라면 문제없지만, 왜곡된 진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살인자가 되는 것에 동참하는 꼴이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또는 고객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참지 못한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고 덮어주는 일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어떻게 하면 내가 당한 일을 되갚아줄까 고민하다가, 가장 쉽게 할 수 있고, 가장 큰 위력을 가진 매체를 선택한다. 바로 인.터.넷. 누군가 올린 글을 읽고 나면 복사해서 여기저기 우편배달부 역할도 하며,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일에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글 쓰는 일 자체도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쓴 글들이 왜곡된 진실을 담고 있을지, 대상자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세상 밖으로 날아간 글은 더 이상 지울 수 없다. 단단하게 굳은 화석처럼 남게 될지도 모른다. 말과 글의 힘을 생각하며 자숙의 시간을 가져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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