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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Sep 10. 2017

신발에 대한 단상

일상의 메모 No.20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신었던 신발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궁금하다. 7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를 반영해 봤을 때, 아마 검정 고무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주 작은 검정고무신이 아니면 리본이 달린 흰고무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고무신을 신어본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때만 해도 운동화가 귀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운동화를 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운동화는 기차표, 왕자표, 말표와 같은 재래시장 허름한 신발 가게에서 사서 신었다. 그러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브랜드 신발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나 또한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졸랐다. 당시에는 나이키와 프로스펙스는 부유한 집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무신을 신었던 내가 운동화를 신게 된 것도 호강인데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이키는 못 신어도 왕자표 운동화는 정말이지 창피했다. 특히 나이키 신은 친구와 나란히 걸을 때,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결국 부모님 주머니를 털어서 브랜드 신발을 장만했다. 내가 최초로 신게 된 브랜드가 바로 아티스다. 브랜드 신발 맛을 본 뒤로 매장에 가면 까발로, 타이거, 월드컵이라는 브랜드 신발만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눈이 더 높아졌다. 나이키, 프로스펙스, 르까프, 아식스를 신었다. 겉멋만 잔뜩 들어 가정 형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나이키를 신고 다니는 동안에 시골에 계신 우리 엄마는 파란 고무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나는 키가 큰 편이라서 굽이 높은 신발에 대한 환상은 없다. 요즘 처녀들이 하이힐을 신고 각선미를 자랑하는 것과 달리 5센티 아래의 굽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때는 아무리 발이 불편해도 굽 있는 신발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랬는데,  지금은 멋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무얼 신든 발 편한 신발을 찾게 되면서, 스니커즈나 슬립온, 플랫슈즈 같은 굽 없고 편안한 신을 많이 신는다. 그렇다고 잘 차려입은 옷에 편안한 신발만 신을 수도 없다. 불편하더라도 옷차림에 따라 어울리는 신발을 신으려고 노력한다.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외출할 때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지하철을 타게 되면 계단이나 걷는 구간이 많다. 발바닥도 아프고 무릎이 시큰거려 구두를 벗어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용기만 있다면 정장에다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싶다. 몸에 붙는 옷보다 뱃살을 가릴 수 있는 옷이 편하고 그러다 보니 옷차림에 따라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신발에 어울리는 편안한 옷차림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아직은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굽 없는 플랫슈즈나 운동화를 신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신발에 관한 흔한 이야기 중에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이 신고 있는 신발만으로도 나이, 성별, 수입 정도, 성향, 성격 등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신발장 속에 가지런히 놓인 내 신발들을 들여다보았다. 내 신발들을 보면 나에 대해 무엇을 짐작할 수 있을까. 나는 장식이 적고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하며 굽 높이는 5센티 정도의 구두를 좋아한다. 굽 낮은 구두일지라도 걸을 때 또각또각 소리 나는 것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오랜 시간 신고 있어도 발이 편안한 신발을 좋아 한다. 그래서 항상 신고 다니는 신발만 선호하는 편이다.


비싼 신발이 아니어도 내 하루를 책임지고 내 건강을 책임질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내 신발. 묵직한 내 체중을 오롯이 받아내고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데려다 주는 고마운 존재다. 오래된 신발이 주는 편안함은 쉽게 포기 할 수 없다. 내 발에 익숙해진 신발은 해가 거듭 할수록 낡아가지만, 나는 그 신발에 더 집착한다. 편안한 신발도 좋지만 아직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예쁜 하이힐도 좋다. 굽이 조금 높은 신발들은 특별한 날을 위해 내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기로 한다. 어느 날, 날개를 달고 좋은 곳으로 나를 데려 다 줄 것같은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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