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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Aug 24. 2017

프랜디가 되어 주세요

일상의 메모 No.19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갔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바라보며 맛있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한테 자꾸 눈길이 갔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아들은 밥을 먹으면서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 한 병을 주문한 뒤 반주로 곁들여 마셨다. 아버지가 취기 오른 얼굴로 한 마디 건넸다. “밥 한 공기 더 시켜주까?”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저기요! 밥 한 공기 더 주세요.”를 외친다. 어느 순간 찌개 냄비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들은 밥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 아버지는 술 한 병을 뚝딱 비웠다. 주섬주섬 일어난 아버지가 계산대로 향하자 아들도 뒤따라 걸었다.


식당에서 만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우리 집 풍경과 닮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권위적인 아버지 대신 친구 같은 아빠가 대세지만, 우리 집은 아직 과거형이다. 아빠의 성격이 매사에 신중하고 과묵한 탓도 있지만 가부장적인 면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때론 위엄 있어 보여서 좋을 때도 있지만, 아들과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항상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대화도 좀 하고 여행도 다니라고 하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노력할게.” 노력한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좀처럼 가까워지질 않는다. ‘무슨 말이 필요해. 그 나이면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이 생각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인정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아들이 고집을 부리거나 삐딱하게 나올 때마다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아빠한테 같은 남자니까 대화가 통하지 않겠냐며 책임을 떠넘기곤 했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지금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아들이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생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결혼은 어떤 사람하고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 날 때마다 함께 산책하는 모습, “내세울 거 없는 저에게도 자랑할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제 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우리 아이들의 부모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부모란 어떤 사람인가를 일깨워준 영화였다. 영화 속 부모는 밤바다를 항해하는 자식을 위해 등대가 되어준다. 길 잃은 배가 시련을 겪더라도 결국에는 반짝이는 등대를 보면서 스스로 어둠을 헤쳐 나오게 한다. 방법을 가르쳐주기보다 마음속에 담아두면 힘이 될만한 말들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우리 주변에도 <어바웃타임>에 나오는 아버지상과 닮은 사람들을 종종 본다. 많은 아버지들이 ‘친구 같은 아빠(프랜디)’가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 집 아버지도 꼰대의 모습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바로 “당신이 제 아버지라서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부모가 사랑을 준만큼 자식도 부모를 사랑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간섭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면 된다. 아들 앞에서 좀 망가지면 어떠냐는 심정으로, 가끔은 실수도 하고 실없는 농담도 하면 좋겠다. 아재개그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바로 활용할 수 있고, 술 취한 날은 기분 좋게 지갑을 열어 용돈을 팍팍 주는 것도 좋겠다. 꼭 반듯하고 완벽한 아빠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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