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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an 10. 2018

나는 뮤지컬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위대한 쇼맨>

좋아하는 영화가 극장에서 빨리 자취를 감추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지난달, 이제는 지난해가 되어 버린 2017년 12월 20일에 개봉한 영화 <위대한 쇼맨>이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막을 내리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관람하기 좋은 영화’라는 기대감을 안겨주던 영화였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우선이겠지만, 개봉 시기도 잘 타고나야한다. 불행하게도 <위대한 쇼맨>이 개봉할 무렵에 막강한 한국영화들이 연달아 개봉했다. 신과 함께, 강철비, 1987까지. 이 중에서 신과 함께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니 <위대한 쇼맨>이 운명을 잘못 타고난 것만은 분명하다.  

<위대한 쇼맨>을 친구와 함께 보고 나서, 나 혼자 한 번 더 보고 왔다. 예상보다 더 빨리 막을 내리고 있어서, 미리 챙겨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2016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라라 랜드>도 내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 상영 기간 안에 꼭 한 번 다시 봐야지 하고 미루다가 놓친 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개봉도 했고, 친구가 따로 USB에 파일을 담아주었기 때문에 보고 싶을 때마다 수시로 볼 수 있어서 좋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라라 랜드>에 매료되어 있고, 덕분에 같은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공연장에서 보는 뮤지컬도 좋아하지만, 극장에서 보는 뮤지컬 영화도 좋아한다.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날것 그대로의 맛을 지닌 뮤지컬보다 다양한 양념과 데코레이션이 가미된 영화가 더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뮤지컬과 달리 무한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이 글을 쓰면서도 <위대한 쇼맨>의 OST를 듣고 있는데, 노래하는 배우의 표정과 감정이 가슴 저릿하게 와 닿는다. 영화나 드라마의 OST가 얼마나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생명력이 길고 관객의 마음 깊이 각인된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이 종종 떠오르기도 하고 그 음악에 맞는 주인공의 대사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시스터 액트, 레 미제라블, 맘마미아 그리고 라라 랜드와 위대한 쇼맨. 영화음악이야말로 스토리에 날개를 달아주고 등장인물들을 우리 곁에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위대한 쇼맨>은 판타지가 아니라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실존 인물의 행적과 관련해 영화 자체가 지나치게 미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 그려진 P.T바넘은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이며, 남다른 감각으로 쇼를 기획하고 흥행시키는 데 성공한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된 사람들을 무대 위로 이끌어 내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사람이며, 그들과의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며,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꾸민 자신의 가정을 소중하게 아끼는 따뜻한 가장의 면모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안에서도 그런 바넘이 자신의 욕망과 출세를 위해 가족을 떠나고, 제니 린드를 비롯한 서커스 단원들을 이용한 사람으로 살짝 비치기도 한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앤딩으로 끝났지만 바넘의 실제 삶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판받고 다. 어쩌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데는 개봉 시기와 더불어 ‘실존 인물에 대한 미화’라는 비판이 한몫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그려진 바넘의 이미지와 실제로 검색해서 읽어 본 바넘의 이미지 간극이 너무 커서 혼란스러웠다. 조이스 헤스, 톰 섬, 피지의 인어, 제니 린드, 코끼리 점보를 악랄하리만치 돈벌이로 이용한 일화들이며 인종차별이 심했다는 사실은  영화에서의 환상을 거침없이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넘은 사실이나 진실이 아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마케팅에 성공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술이 속임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즐기는 것처럼, 사람들은 바넘의 속임수를 알면서도 그의 쇼를 즐겼다. 바넘은 이런저런 비판 속에서도 ‘미국 엔터테인먼트의 글로벌화의 시초’ ‘역사 이래로 최고의 쇼맨’‘광고의 셰익스피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P.T바넘과 톰 섬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사실들을 알고 봤다면 어땠을까? 영화 관람 후기를 탐색하다가 바넘의 실체를 알게 된 지인은 아예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하니, 그럼 감독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마도 영화는 영화일 뿐. 바넘의 일대기를 소재로 다루긴 했지만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최대한 살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관객들 또한 이 영화가 선사하는 화려한 볼거리와 따뜻한 스토리, 아름다운 음악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찜찜하다면 P.T 바넘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 번쯤 검색해서 읽어본다면,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P.T바넘이 남긴 말 ㅡ"가장 고귀한 예술은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2017년 연말에 친구와 함께 본 <위대한 쇼맨>은 누가 뭐래도 내게는 아주 특별한 영화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시간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OST가 흘러나오면 함께 봤던 영화를 떠올리며 그 기억의 시간이 호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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