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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an 02. 2018

2018 해맞이 풍경

-낙산해수욕장에서 첫날을 열다

2018년 1월 1일 아침 6시 30분에 알람이 울렸다. 해뜨기 직전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를 예상하고, 꽁꽁 싸맨 채 해변으로 나갔다. 다행히 날씨가 포근해서 얼굴과 손발이 빨갛게 얼어붙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다는 이미 밀려든 사람들로 여름해변을 연상케 했다. 새해 첫날 만난 바다는 힘차게 파도를 몰고 와, 사람들 발 앞에서 넙죽넙죽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수평선 너머 해를 기다리며, 사람들도 나란히 수평선 따라 줄을 섰다. 사랑하연인들과 가족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서있었다. 한쪽에서는 소원 등에 불을 붙여 띄우느라 분주하고, 모래 위에 소원 촛불을 꽂아 놓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스름이 남아있는 하늘 위로 소원 등이 두둥실 떠오른다.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품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길 염원하며 작은 불꽃을 태우며 날아오른다. 소원 등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반짝이며 누군가의 별이 된다. 점점 더 높이 날아올라 보이지 않는 등, 까맣게 타들어가면서도 유유히 날아오르는 등, 날아오르다 중간에 힘을 잃고 불이 붙은 채 바다로 떨어지는 등, 띄워보지도 못 하고 얇은 종이에 불이 붙어 모래 위에서 그대로 불타버린 등. 사람들은 높이 날아오르는 등을 쳐다보며 일제히 환호를 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등을 보며 모두 다 안타까워했다.

나는 소원 등에 불을 붙이고 띄우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남들이 띄워놓은 등을 바라보며 감상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직접 띄워보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종이 위에 우리 가족들의 소원을 적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해 달라는 문구와 함께 ‘독하게 살자’라는 문구도 하나 더 적었다. 결심한 일이 있으면 이루어질 때까지 독한 마음을 먹고 노력해보자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굳게 마음먹어보자는 말에 가족들 모두 공감하며 적었다.  


제법 큰 등을 살살 펼쳐 형태를 잡은 다음 심지에 불을 붙였다. 열기가 종이 등 안에 가득 찰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던 판매원의 말대로 오래 기다렸다. 어느 정도 등의 형태가 잡히자, 우리는 잡고 있던 손을 과감하게 놓았다. 하지만 등은 다시 아래로 가라앉아버렸다. 그때 우리를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분이 “손을 놓지 말고 조금 더 오래 잡고 있어야 해요.” 다급한 목소리로 알려주셨다. 소원이 적힌 등에 불이라도 옮겨 붙을까 봐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하늘 높이 띄우는 데 성공했다. 사소한 일이지만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생각에 그쳤던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이 많았다. 가족이 함께 해맞이를 온 것도 그렇고,  서로의 소원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소원 등에 실어 보는 것. 작년처럼 남들이 띄운 소원 등만 바라보았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을 올해는 느낄 수 있었다. 새해 첫날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아침 7시 30분이 가까워올수록 동쪽 방향 수평선 근처는 저녁노을처럼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붉은빛은 점점 더 넓게 더 진하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머리를 밀고 쑥 올라오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수평선에서 갓 올라 온 해는 달걀노른자처럼 탱글탱글, 한입에 쏙 넣고 빨아도 좋을 법한 알사탕 같았다. 해변에 늘어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스마트폰에 담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촬영하느라 제대로 못 보고 놓칠까 봐 눈에 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손을 가만 둘 수 없었다. 슬쩍슬쩍 몇 컷을 찍고 짧은 동영상도 찍고 나서야 이어서 다시 감상할 수 있었다. 해는 잠깐 사이 눈부신 빛을 뿜으며 세상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난 후 이리저리 흩어지는 사람들. 사람들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그대로 남아 있고, 바다는 여전히 파도가 출렁이고 해는 점점 더 단단한 모습으로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장난감처럼 늘어선 차들이 가로막고 있어, 얽히고 설킨 도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길을 거북이처럼 기어간다 해도, 가슴 가득 희망과 추억을 담고 가니까 문제 삼지 않았다. 결국 양양에서 서울까지 여섯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그래도 괜찮다. 일 년을 살아가는 첫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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