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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Dec 26. 2017

산타에 대한 환상이 깨지던 날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큰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찍찍대는 생쥐 소리처럼. 작은 아이를 흔들어 깨우며

“일어나 봐, 어서!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셨어.”

작은 아이가 눈을 떴는지 사뿐사뿐 가만가만 까치발을 한 두 아이가 거실로 나왔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인 선물꾸러미를 들고 바스락바스락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자는 척하며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선물을 다 뜯더니 서로 흡족한 듯 대화는 계속되었다.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우리 마음을 이렇게 잘 알지?”

“신기하다.”

“야, 나 사실은 밤에 잠 안 자고 계속 기다리다 잤거든. 산타할아버지 못 봤는데.”
“산타할아버지가 느리게 다니면 다 못 다니잖아. 그래서 빨리 지나간 거야.

“우리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잠들지 말고 기다렸다가 산타할아버지 꼭 만나보자.”

“응”


 

이렇게 환상 속에 살던 아이들이 어느 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는 거죠? 엄마가 선물 주는 거잖아요.”


 

이 말을 듣고도 절대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죽어도 그게 아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계신다. 엄마 아빠는 산타처럼 하기에 너무 졸리고 힘들어서 늦은 시간에 선물 못 준다며 변명했다.


 

 “엄마는 어른인데도 산타를 믿어. 산타는 마음속으로 믿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나타나신단다.”  


 

이런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나면, 또 아이들의 산타 환상은 기간이 연장되곤 했다. 결국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엄마가 준 거 맞죠? 선물 포장지 보니까 엄마가 사 온 거랑 똑같은 거잖아요.”


 

그러자 작은 아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이 편지도 엄마가 컴퓨터로 쓴 거잖아요. 프린터기로 출력하는 소리 다 들었어요.”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신중하고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만 조심했으면 아이들의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더 오래 지켜줄 수 있었을 텐데.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끝까지 아니라고 말하기 뭐해서 적당히 둘러댔지만, 그다음 해 크리스마스부터는 더 이상 산타를 기다리지 않는 눈치였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십 년도 더 지난 오래된 추억을 회상하며 나눈 이야기다. 나는 아이들이 소곤대던 그 목소리와 대화 내용이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그때 눈을 감고 듣고 있는 내 모습,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큰아이가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타는 안 와도 되는데, 선물은 계속 받고 싶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엄마가 선물 다시 주면 안 돼요?”


 

아이고, 이런! 선물 받고 싶은 건 엄마도 마찬가지란다. 얘들아! 너희들이 산타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설렘과 꿈이 있었는지 떠올려 봐. 나는 너희들의 산타가 될 수 있어서 또 얼마나 흐뭇하고 기뻤는지 모른단다. 더 오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는 동안 힘들 때마다 산타가 되어 주고 싶어. 그러니 너희 마음속에 ‘엄마 산타’를 꼭 기억해주렴.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언제든 달려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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