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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an 28. 2018

영원히 기억해 줄게

영화, <코코>

가끔 찾아가는 합정동 ‘비바 멕시카나’는 이
그대로 멕시코 음식점이다. 상호가 왜 ‘비바’ 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비바는 멕시코에서 ‘건배! 인생은 파티야!’라는 뜻으로 통한단다. 간판에 글자와 함께 그려져 있는 해골 그림도 무심코 지나쳤었다. 영화 '코코‘를 보기 전까지는.


금요일 저녁 <코코>가 상영되는 극장 객석이 빈틈없이 채워졌다.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어른들이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21분짜리 단편영화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가 나와서 조금 의아했지만, 사랑스러운 올라프를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2013년 겨울왕국 판타지에 빠졌던 관객이라면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21분 동안 적잖이 몸이 뒤틀렸을지도 모른다.  

<코코>는 주인공 미구엘이 ‘죽은 자들의 세계’를 모험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오래전 죽은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현생으로 돌아가려면 죽은 자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만난 가족들은 미구엘이 음악을 포기하면 축복해주겠다고 한다. 미구엘은 뮤지션이 되기를 갈망하지만, 현생에서도 할머니가 기타를 부수어 버릴 만큼 미구엘 집안 대대로 음악이라는 말은 금기어였다. 미구엘은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친다.
“그게 가족이잖아요. 응원해주는 거.”  


미구엘은 생전 전설의 뮤지션이었던 고조할아버지라면 자신을 축복해주리라 생각하고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를 찾아 나선다. 델라 크루즈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진짜 모험과 이야기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헥터가 미구엘이 찾던 고조할아버지이고, 전설의 뮤지션 델라 크루즈는 헥터와 함께 음악을 했던 친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 델라 크루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친구 헥터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결국 미구엘은 고조할아버지인 헥터와 고조할머니 이멜다의 축복을 받고 현생으로 돌아온다.  

미구엘은 증조할머니 마마 코코의 기억 속에서 헥터를 되찾아주어야 했지만, 마마 코코는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헥터를 기억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마마 코코였는데, 그 기억이 사라지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헥터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다. 다급한 마음에 미구엘은 헥터가 뮤지션이 되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마마 코코에게 불러 준 노래 ‘리멤버 미’를 들려준다. 그러자 마마 코코는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장면이야말로 눈물샘을 제대로 자극한다.)마마 코코는 평생 간직해 온 헥터의 찢어진 사진을 꺼낸다. 헥터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영원히 소멸되기 직전에 다시 가족들의 기억 속으로 되돌아왔다.

디즈니 픽사에서 만든 영화 <코코>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멕시코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디즈니 영화를 ‘믿고 보는 영화’라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상상력의 한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죽은 자들의 신비로운 세상과 그들이 건너고 싶어 하는 화려한 색깔의 메리골드 꽃길이며, 해골들의 뼈가 익살스럽게 움직이는 장면들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결과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인다는 점, 가족의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려서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아름다운 음악들과 곳곳에 숨겨진 장치들, 화려한 볼거리, 다양한 색채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영화 재현을 위해 제작진은 멕시코 곳곳을 3년이나 돌아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다음 영화의 배경 지를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닐지 모른다. 문득 디즈니에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 궁금해진다.   

일 년에 한 번,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을 기념하는 명절이 있다. 죽은 친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현생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중요한 날이다. 죽은 자들을 위해 묘지 위에 꽃으로 장식하고, 촛불을 밝히고, 종이 접기로 만든 수공예품으로 장식도 하고,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하고 좋아하던 음악을 틀기도 한다. 죽은 자들을 후하게 대접하면 복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죽은 자의 날’을 만들어 현생으로 여행을 온 그들을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비해, 종교적으로 접근하면 다르겠지만 우리는 대체적으로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을 불러와서 후하게 대접한 뒤 보내면 복을 받는다는 믿은 똑같다. 그래서 죽은 날을 기념하는 ‘제사’와 명절만큼은 상을 차려 후하게 대접한다. 제사상을 차리는 후손들은 점점 제삿날 상 차리는 것을 귀찮아하니, 우리 조상들은 그나마 얻어먹던 밥도 못 얻어먹을까 봐 불안해하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 살다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까? 살아있는 동안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이 세상에 자신이 살다 간 흔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누구나 다 명예를 얻을 수 없다. 작은 울타리 안에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이 바로 가족이고 친구들이다. 사소한 기억들을 간직한 채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고 그리워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에게서도 점점 잊혀가는 게 순리다.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면 살아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만큼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이 더 우선시되는 요즘, 영화 <코코>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 오래전에 곁을 떠난 아버지를, 죽는 날까지 가슴에 품고 살았던 마마 코코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나를 기억해 줘. 내가 아빠를 기억했던 것처럼...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기억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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