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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an 30. 2018

눈을 감아도 보이는 찬란한 빛

영화, <빛나는>

우리가 평소 즐기는 문화생활 중에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영화 관람이다. 나 역시 한 달에 한두 편 이상은 본다. 오래된 영화를 집에서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극장에서 보는 재미는 더 쏠쏠하다. 만약 외국 영화를 볼 때 한글 자막이 없으면,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 한글 자막이 있더라도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영화를 본다’는 것.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영화를 보려면 반드시 지참해야 할 것이 있다. 앞을 볼 수 있는 눈과 생생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그리고 상상력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영화는 소리와 상상력만으로, 귀가 들리지 않으면 화면에 나오는 장면과 상상력만으로 보게 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결핍된 상태라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렵다.  


시각장애인들은 영화를 어떻게 볼까. 나와 관련 없는 부분이라 무심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궁금증이 생겼다. 예전에 라디오 드라마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꽤 흥미로웠다. 음향 효과도 간간이 들어있어서 재미를 더했다. 보통 사람들과 같은 영화를 볼 때 시각 장애인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 뭘까 생각해 봤다. 아마 목소리와 다양한 음향 효과를 들었을 때, 실제 그 장면이 어떤 모습인지 몰라서 답답할 것 같다. 만약 누군가 화면에 나오는 장면을 잔잔한 목소리로 표현해준다면 도움이 될까 방해가 될까.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일본 영화 <빛나는>은 내 궁금증을 해소해 준 영화다.  

음성 해설자 미사코

영화 도입부는 시각장애인들 몇 명이 모여 영화 감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보이지 않으니 모두들 초점 없이 한 곳을 응시한 채 귀를 기울인다. 한쪽에서는 ‘음성 해설자’가 화면을 설명한다. 시각장애인들은 각자 돌아가면서 음성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느낀 점을 발표하며 모니터링한다. 음성 해설을 맡은 주인공 ‘미사코’는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뜻밖에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쓴소리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시각장애인들은 해설자를 고맙게만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 ‘나카모리’를 비롯한 몇몇은 해설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달되긴 했지만 강요받는 것 같지 않나요?”

“여백을 느끼고 싶을 때 설명이 너무 많아서 좀 방해가 됐다고 할까요.”

“그건 전부 주관 아닌가요? 이대로라면 방해만 됩니다.”

“처음 장면 주조의 작업실 말이에요. 표현을 너무 덜어냈군요. 그래서는 전혀 공간을 재현할 수 없어요.”

미사코는 울먹이며 난처해한다. 특히 나카모리의 날카로운 지적에 반박도 해보지만 이내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미사코는 우연히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나카모리를 관찰하게 되고, 차츰 나카모리한테 관심을 갖게 된다. 그가 촉망받던 ‘포토그래퍼’ 였다는 사실과, 점점 시력을 잃어서 사진 찍기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카모리에게 카메라는 ‘심장’과 같은 존재지만, 미사코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찍은 뒤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기로 결심한다. 가장 소중한 걸 잃어야 한다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감수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미사코도 사랑하는 아빠를 잃고 아빠가 남긴 유품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또 치매 걸린 엄마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한다. 두 사람은 마음이 삐걱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마음을 열어준다.      

미사코가 나카모리에게 느끼는 연민을 나카모리는 거부한다. 나카모리의 집에서 나카모리가 만들어준 야끼소바를 함께 먹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미사코의 부축 없이 혼자 간다. 낯선 길처럼 두렵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기다리고 있지만 나카모리는 꿋꿋하게 혼자 감당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영화 감상이 끝나고 나카모리의 집 앞 어두운 골목길에서 기다리는 미사코가  

“나카모리 씨 제가 갈 게요.”

하고 외치자 나카모리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뒤쫓지 않아도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대로 당신에게 갈 테니 거기서 기다려요.”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천천히 미사코를 향해 걸어오는 나카모리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사코가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은 가슴 뭉클했다.

다시 시각장애인들의 영화 감상 이야기로 돌아오자. 음성 해설자 미사코의 인내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미소 짓기도 하며 행복해 보였다. 그들이 갈망하던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음성 해설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음성 해설자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영화의 세계와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다. 영화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지 이처럼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영화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옮겨 본다.


“저희는 영화를 볼 때 화면을 감상한다기보다는 광대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해요. 어느새 거기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음악을 듣고 여러 체험을 느끼며 영화를 보는 거예요. 영화는 거대한 세계를 경험하는 거예요. 그 거대한 세계를 말로써 작게 만들어 버리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죠.”


우리나라에서도 CJ CGV가 '시각장애인 협회들'과 협력하여 2012년부터 ‘장애인 영화 관람 데이’를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베리어 프리(barrier free) 캠페인도 하고 찾아가는 이동 영화관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음성 해설이 되어 있는 영화 수가  턱 없이 부족하다 보니, 시각장애인들에게 쏟아져 나오는 영화들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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