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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Oct 26. 2016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

일상의 메모 No.3

-고독, 소리없는 아우성-


나는  책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고 영혼이 살찌는 느낌이다. 더 솔직하게는 책을 눈으로 보거나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한때는 미친듯이 책을 사 모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들인 권수에 비해 중간중간 맛만 보고  덜 읽은 책도 수두룩하다. 읽는 것 자체는 좋아하지만, 책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언제나 책은 뒷전이다. 나의 풀린 고삐를 단단히 조여줄 누군가의 힘이 필요해서,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첫시간에 읽은 책이다. 내겐 너무 낯선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이다.


1960년대 공산주의 체제하의 체코 프라하를 배경으로,지하에서 35년째 폐지 압축공으로 일해온 남자의 이야기다. 금서로 분류된 책더미들(주로 문학과 철학서들 )이 폐지처리장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남자는 압축기에 넣기 전에 골라서 읽으며 뜻하지 않게 엄청난 교양을 쌓아, 종국에는 현자에 이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바깥 세상은 전쟁과 폭력이 만연했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곳, 음습한 지하실에서 맥주를 들이켜가며 책을 읽는 것이야 말로 남자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예수,노자,칸트,니체,헤겔 등등...작가나 철학자들의 형상을 떠올리며 그들과 동반자가 된다.


폐지 압축하는 일을 35년  동안  일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하고 싶다던 남자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폐지 처리장에서 거대한 압축기를 대면한 뒤, 남자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더 이상 자신의 세계가 없다고 생각한 남자는 책들과 함께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다.


130쪽 정도 분량의 짧은 책이지만 내용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작가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이 이 책을 쓰기 위해서라는 말처럼, 너무나 많은 내용들이 묵직하게 압축된 것 같다.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눈 뒤 내 생각을 따로  정리하려는데, 간단하게 일축할 수가 없다.


그저 스스로 고독을 선택했고, 그러는 동안 행복했고, 죽음마저 한탄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길이리고 생각한 남자에게 연민이 느껴질 뿐이다. 죽음의  순간에 떠올린건 다름 아닌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이다. 남자가 느낀 너무나 시끄러운 고독 속에 사랑이 더 깊이 자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작가는 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제목을 선택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참고가 될만한  책에 대한 해설 몇 줄을 옮겨 본다.

-전체주의 사회의 공격에 맞선 저항의 외침이자, 무분별한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퇴보하는 노예화되고 우둔해진 사회에 대한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우화.

-책이 종이쪼가리로 취급받게 된 냉혹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화자의 정신 상태를 그려냈다.

-책을 고독의 피신처로 삼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한 책에 바치는 오마주다.


*<영국왕을 모셨지>는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이다. 조금더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한 이야기가 당긴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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