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향 Feb 17. 2018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보고 싶은 영화들이 한꺼번에 개봉할 때도 있지만, 최근에는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휴일 저녁에는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 심심풀이 삼아 극장을 찾아갔다. 이병헌이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믿고 본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큰 기대 없이 본 영화가 의외로 재미와 감동을 주는데 이 영화그랬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산산조각 난 가정, 그리고 혼자 남겨진 아들 조하의 처절하게 고독한 삶. 시간이 흐른 뒤에 엄마와 조하는 다시 만났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원망과 오해가 쌓여있음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은 다시 관계 속으로 발돋움한다. 엄마와 조하의 서먹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매개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부동생 ‘진태’였다.  

진태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이다. 서번트 증후군은 사회성이나 의사소통능력은 부족하지만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진태는 피아노 연주에 천재적 능력을 보인다. 스마트폰 하나로 독학을 할 뿐, 누구한테 레슨 한 번 받아 본 적 없다. 진태는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더 순순하고 행복해 보인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못난 아들의 모습도, 세상 사람들의 조롱도 잊은 채, 진태에게는 음악이 전부였다. 형 조하가 한때 복싱이 전부였던 것처럼.

<라라 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피아노 연주를 위해 꼬박 몇 개월간 맹연습했다고 들었다. 이 영화에서 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은 라이언 고슬링이 쳤던 곡 보다 더 어려운 곡들을 연습했다. 무려 6개월이라는 시간을 매일 6시간 이상씩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도 소화하기 힘든 명곡들을 박정민이 건반 자체를 다 외워서 잘 치게 됐단다. 라이언 고슬링은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지만, 박정민의 경우는 실제 연주자는 따로 있다고 했다. 어차피 배우 박정민이 직접 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저렇게 노력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피나는 노력 덕분에 관객인 우리들은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태는 눈빛, 몸짓, 말투, 손가락 하나하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보는 내내 ‘진짜 장애인 같아.’라고 느낄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 이것 역시 진태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박정민이 실제 장애인 단체로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분위기도 익히고 연기 도움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 배우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진태의 엉뚱한 행동이나 말이 나올 때마다 실컷 웃다 보니, 괜스레 장애인에 대해 희화화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살짝 뜨끔한 마음도 들었다. 웃으려 준비하고 간 영화가 아니었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데는 이병헌의 코믹 연기도 한몫한 것 같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과 말투,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갖춘 이병헌과 박정민은 환상의 콤비였다.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피아노 선율에 흠뻑 취할 수 있어서 좋다. 피아노를 못 치는 사람이라도 ‘젓가락 행진곡’은 한 번쯤 쳐 봤을 것이다. ‘헝가리 무곡’, ‘쇼팽의 야상곡’, ‘쇼팽의 즉흥환상곡’ 등 우리 귀에 익숙한 곡들이 눈앞에서 연주된다. 무엇보다 천방지축 사고뭉치 진태가 피아노 앞에만 서면 태도가 진지 해진다. 피아노를 치는 진태의 행복한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봄날 오후 햇살 아래에 누워있는 나른한 진태를 상상하게 만든다.

O.S.T 중에는 들국화의 전인권 목소리로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노래도 나오는데, 노래 가사가 영화 내용과도 잘 어울리고  멜로디에 의미가 더해져서 좋았다.  제목에서 ‘그것만이 내 세상’은 누구의 세상을 말하는 걸까. 내 느낌으로 영화에서는 진태와 조하의 세계를 각각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았다. 조하가 부르는 ‘그것만이 내 세상’과 진태가 부르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노래. 조하는 복싱을 하면서 고독한 세상을 이겨냈고, 진태는 피아노를 치면서 유리벽을 뛰어넘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장애인들이 있다고는 하나, 진태처럼 운 좋게 발굴되어 스타가 되기란 너무 비현적이다. 우리는 이미 매스컴을 통해 가난하기 때문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고, 장애까지 갖고 있다면 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체 조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면, 당당하게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진태 같은 꿈나무가 그저 영화에서만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내 세상> 노래 가사를 옮겨 적어 본다.   


 그것만이 내 세상 / 들국화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잔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작가의 이전글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