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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Mar 04. 2018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영화, <리틀 포레스트>

몇 년 전부터 귀촌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며 지친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한다. 최근에는 청년들도 귀촌을 많이 한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고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도시라는 곳은 왜 그토록 사람들을 지치고 병들게 하는 건지. 도시의 순기능도 많지만, 인구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도시를 병들게 한다.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 지친 사람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도망치듯 도시를 떠나 돌아오는 귀촌 붐은 그래서 안타깝다. 나 역시 매일 아침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고, 복잡한 지하철이나 버스,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거대한 빌딩 숲에서 답답하게 살고 있다. 사람 관계는 또 얼마나 복잡한가.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빡빡한 현실은 점점 사람 관계를 삭막하게 만든다.

나는 어린 시절을 자연과 더불어 보낼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 생각한다. 맑은 공기와 자연이 주는 먹거리 그리고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풍경까지 마음껏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에 비해 시골에서는 자연의 변화를 피할 길이 없다. 몸과 마음으로 오롯이 계절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지금은 남의 집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집. 툇마루와 넓은 마당이 있고, 낮은 담장 밑에 소복이 피어있던 꽃들, 오래된 감나무와 앵두나무, 능금나무.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너풀너풀 빨래가 춤추던 곳. 그곳의 하늘과 강, 바람과 햇살이 지금도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내 오래된 기억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주인공 혜원과 재하는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시기에 다른 계기로 도시를 떠나게 되었지만, 고향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거기에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는 친구, 고향 지킴이 은숙이 있다. 세 친구는 혼자 생활하는 혜원 곁에서 도움을 주며, 혜원이 손수 만든 요리를 함께 먹으며 추억을 나눈다.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재하와 은숙이 없었다면, 혜원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큰 농사가 아닐지라도 여자 혼자 먹거리를 재배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재하와 은숙이 함께 있어서 봄과 여름 가을까지 보내고 겨울에 도시로 돌아간다. 재하 말대로 혜원은 아주 돌아오기 위해 잠시 도시를 다니러 간 것이다. 이듬해 봄에 다시 돌아왔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것은 사계절의 아름다운 모습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다. 봄의 연둣빛 새싹과 노란 산수유가 주는 설렘은 곧 다가 올봄을 더욱 기다리게 만들었다. 여름의 짙푸른 초록색, 가을 들판의 황금빛 물결,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장면도 마음이 따뜻하게 만들었다. 봄에 뿌린 씨앗에서 싹이 올라오는 장면과 감자와 토마토가 쑥쑥 자라는 모습, 한여름밤에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는 장면과 은숙이 아버지 몰래 가지고 온 술을 나눠 먹으며 밤하늘 별을 바라보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혜원의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도 엄마는 고향을 지킨다. 혜원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그곳의 흙냄새와 바람 냄새를 기억하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혜원이 도시에 가서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고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으리란 엄마의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주며 엄마의 특별한 요리로 사랑을 표현했다. 엄마의 요리를 먹고 자란 혜원 역시 엄마 못잖게 요리를 잘하게 되었으며,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엄마가 해 주던 요리를 혜원 자신이 만들어 먹으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는 힘이 세다."

산에 알밤을 주으러 갔다가 가을산에는 곰이 나타난다는 엄마의 말을 기억하며 줄행랑을 치던 혜원이 했던 말이다. 요리의 재료와 맛에 대해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혜원의 삶에 큰 힘을 발휘한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을 찾은 혜원이 마당에서 꽁꽁 얼어버린 배추를 뽑아 와서 끓인 배추 된장국을 시작으로 치자와 시금치로 물들인 쌀가루에 삶은 팥을 올려 쪄낸 시루떡, 누룩으로 직접 빚은 막걸리, 양배추로 만든 빈대떡, 생배추로 부친 배추전, 밤 조림, 아카시아와 쑥 튀김, 꽃잎을 올린 파스타, 김치수제비, 매운 떡볶이, 말린 곶감, 밭에서 바로 딴 토마토 먹는 것까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삼시 세끼, 도시 어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이미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선보였다. <리틀 포레스트>에 등장하는 음식들도 보는 내내 침샘을 자극했고, 영화 스토리와 뒤섞여 음식에 더 큰 의미가 더해진 것 같다.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로 첨가물 없이 만들면, 재료 본연의 맛으로도 근사한 맛이 난다. 혜원이 낡것 그대로 먹었던 오이, 토마토, 양배추만 해도 시골에서 직접 재배한 것과 도시에서 사서 먹는 것은 맛이 다르다. 혜원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먹던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과 비교할 수 없는 음식들이다. 혼밥족이라도 자신을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건강한 밥상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이 영화의 매력 중 한 가지는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요리 솜씨는 없지만 영화에서 본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맛있는 음식이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열 마디 말보다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덕분에 유년의 추억과 함께 소울 푸드를 떠올린 하루였다.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지만 이 영화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담백한 자연의 맛을 담은 음식이 대부분이다. 내가 만든 요리를 먹어 줄 가족들을 생각하면, 내일부터 요리 시간이 더 즐거워질 것 같다.


*모든 사진 출처는 네이버 영화 스틸컷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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