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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Feb 10. 2018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수영 배우기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 다리 밑에는, 여름 내내 맑은 물이 흘렀다. 한낮이면 홍시처럼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마을 아이들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팬티 차림 그대로 물장난을 하며 놀았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자갈 위에 닿아있던 내 발이 모래를 디딘 것처럼 쑥 들어갔다. 발은 점점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결국 꼬르륵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코로 입으로 물이 들어왔고 숨쉬기 힘들어서 얼마나 버둥대고 허우적거렸던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아이들은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나는 물에 빠져 의식을 잃었을 테고, 뒤늦게 발견한 아이들이 어른들을 데리러 갔다 온 사이 어쩌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신기한 것은 어쩌다 보니 다시 바닥에 발이 닿았고, 나는 운 좋게 살아 나왔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물에 빠진 경험은 어른이 된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내게 물은 언제나 감상의 대상일 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불편한 존재였다. 


수영을 한지 오래된 친구가 내게 용기를 준 덕분에 수영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정해진 시간에 매번 참석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수영복 차림의 어색함. 무엇보다 물속에 들어가서 뭔가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수영 이층 창문 너머로 남들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호텔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유영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던 나였다. 그러던 내가 수영을 배운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엄마를 응원해주었다.  "잘 생각했어. 엄마! 나도 수영 다시 하고 싶다." 하며 부러워한다. 아이들이 수영복을 입어보라고 해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새로 산 수영복도 미리 입어보았다. 아이들은 그저 그런 나의 행동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어댔다.

 초급반의 물은 엉덩이가 잠길 정도의 깊이다. 처음에 숨 쉬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차츰  물에 뜨는 법, 발차기, 팔 돌리기 등 기본적인 것 하나씩 배우고 있다. 물에 뜨려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면서, 물에 대한 공포야 말로 몸을 긴장하게 만들어서 물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한 마리의 물고기가 몸통 전체를 움직이며 지느러미를 이용해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처럼, 나의 뻣뻣 한 팔과 다리, 손과 발이 얼마나 조화롭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새로운 운동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꾸준히 배우다 보면 어느새 능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영도 그렇다. 타고나지 않아도 연습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토록 무서워하던 물이 며칠 만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손을 내미는 것 같다. 아직은 믿을 수 없는 물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다리 밑에서 첨벙 대던 아이의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수영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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