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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Mar 04. 2018

계주를 보다가

-스포츠가 주는 감동의 깊이

평창 동계올림픽이 무사히 잘 끝났다.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들이 금메달을 따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빙판 위에서 칼날을 세우고 질주하는 선수들, 이어 달릴 같은 편 선수의 엉덩이를 밀어주는 과정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선수들끼리 몸이 부딪칠 때도 조마조마하지만, 엔진을 단 듯 달리는 스케이트 날끼리 부딪칠까 봐 더 불안했다. 막판에 우리 선수 한 명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결국 우리는 금메달을 땄고 경쟁하던 중국과 캐나다는 실격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빚어졌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한 번 더 보고, 스포츠뉴스 하이라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봤다. 여전히 가슴 뭉클하고 대견한 광경이었다. 


 

쇼트트랙 경기를 보면서 내 마음은 어린 시절 운동회가 열리던 운동장으로 떠나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달리기가 느려서 3등 이내에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주목을 받았지만, 체육 잘 하는 아이들이 더 돋보였다. 그중에서도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는 운동회 날이면 학교 영웅으로 급부상되기도 했다.  


 

우리 반에는 말썽꾸러기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여자들을 괴롭히고 친구들과 싸우는 사고뭉치였다. 공부도 못 하면서 말썽만 부린다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를 밥 먹 듯했지만 운동장에서만은 그 아이를 능가할 자가 없었다. 운동신경이 발달해서 못 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였다. 가을 운동회에서 청군 백군 계주 달리기는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다. 머리에 띠를 두른 아이들이 바통을 손에 들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청군 백군이 번갈아가며 순위가 바뀔 때마다 구경꾼들은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다. 마지막 선수가 바통을 이어받으면 구경꾼들은 점점 운동장 안쪽으로 가까이 붙어서며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우리 반 말썽꾸러기 그 아이가 뒤늦게 이어받은 바통을 잡더니, 엄청난 속도로 상대편 선수를 따라잡아버렸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가슴 가득 끓어오를 만큼 컸던 것 같다. 평소에 여자 아이들을 귀찮게 해서 우리 모두 싫어하던 그 아이. 나도 그 순간만큼은 그 아이가 멋있어 보였고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쇼트트랙 경주를 보면서 온 국민들의 마음은, 오래전 내가 느꼈던 흥분과 감동 그 이상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듭하면서 팀끼리 호흡을 맞췄을까.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의 깊이가 어떤 것인지 이번 올림픽에서도 여러 번 맛보았다. 그들 덕분에 세계 속에 평창이 더욱 빛나는 날이 되었다. 고생한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당분간 달콤한 휴식이 주어지길 바란다. 다음 목표를 위해 또 열심히 달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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