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향 Mar 13. 2018

봄볕

-일상에서 느끼는 따사로움

우리동네 신축 아파트 공사장은 겨우내 더딘 움직임이었는데, 봄이 되면서 인부들도 북적이고 트럭들도 뒤뚱거리며 오간다. 낮 12시 30분쯤 공사장 앞을 지나다가 인부들 대여섯 명이 공사장 담벼락 앞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인근 함바집에서 든든하게 점심을 먹은 뒤, 자판기 믹스커피를 한 잔씩 들이켰을 법한 모습이다. 손에는 방금 불 붙인 담배를 든 사람, 이쑤시개를 든 사람, 휴대폰을 든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침 봄햇살은 어찌나 따사로운지 인부들이 앉은 담장 아래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고된 일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들의 휴식 시간이 오늘따라 나른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종종걸음으로 길을 가던 나도 어디든 양지바른 곳에 앉아 봄볕을 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집 밖으로 나올 엄두도 못 낼 만큼 강력한 한파로 몸과 마음이 음습한 상태였으리라. 햇볕에 이불을 널어 말리듯 몸도 마음도 햇볕을 쬐어 보송보송하게 말리고 싶다. 딱히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일단 집 밖으로 나와서 무조건 걸어다. 자주 오가는 동네 골목도 좋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것도 좋다. 공원에 뿌리내리고 있는 크고 작은 식물들을 눈여겨보라. 아마 우리보다 먼저 봄볕을 쬐가지 끝까지 물을 올려보내며 잠을 깨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눈이 싹 틔울 준비를 다 끝내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니면 평소 다니는 마트 대신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 봐도 좋다. 보폭은 조금 느리게 천천히 재래시장을 둘러보면, 봄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어린 모종도로 앞까지 쭉 늘어놓은 화원, 봄나물 가득한 채소가게, 살이 통통하게 오른 봄 생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금 쪄낸 쑥버무리. 집으로 돌아올 때는 검정 봉지 안에 작은 봄 하나쯤은 담아 오게 될지도 모른다.  볕 좋은 날은 내가 머무르는 곳 어디라도 행복한 시간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계주를 보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