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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Sep 01. 2018

검은 모래, 구소은 작가님께


아름다운 지연 씨를 만나 참 좋아요. 소중한 인연,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우리, 행복합시다. -2015.7.1 구소은-


작가님의 첫 장편이 '제주 4.3평화문학상'이라는 근사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축하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구입했었죠.  마침 프랑스에서 귀국한 작가님을 만나 친필 사인을 직접 받을 수도 있었고요.  하루에도 수많은 신간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내 지인이 쓴 책은 좀 더 특별하더라고요.

책을 손에 넣은 지 벌써 3년이 지났어요. 지금에 와서야 부끄러운 고백을 합니다. 그때는 숙제처럼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검은 모래>를 읽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어요. 결국 어영부영 내용만 훑어보고 다시 책꽂이에 꽂아 놓고 말았어요. 다음에 꼭 한 번 더 읽어야지 하고 눈길만 주곤 했죠. 늘 아이들한테는 정독을 하라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대충 읽는 태도라니, 가슴 뜨끔했답니다.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이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읽어야지 하고 미루던 <검은 모래>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새 책 <무국적자>를 읽기 전에 반드시 <검은 모래>부터 제대로 읽겠노라고 마음먹었어요.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 왜 진작 읽지 않고 미루 뒀을까 엄청 후회했지요. 너무 늦게 <검은 모래>의 진가를 알아보게 돼서 미안해요.


책은 한 세기를 아우르는 대하소설 느낌도 들고, 구월, 해금, 건일(켄), 미유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끈끈한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더군요. 제주도 해녀의 운명을 타고난 구월과 해금의 억척같은 삶 속에 역사적 배경을 잘 녹여, 지난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미야케지마나 와다우라 등 실존 지역이 등장하는 것도,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남으로써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짓밟히고 희생 당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작은 책 한 권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아요.


이처럼 의미 있고 방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작가님이 5년이라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는 사실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덕분에 제주도 해녀들의 삶에 대해, 그녀들이 일본으로 출가 물질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조국을 잃은 채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던 재일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을 엿볼 수 있었어요. 아빠 켄과 딸 미유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하프냐 쿼터냐를 두고 번뇌하는 모습에 조국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 안타까웠어요.


디아스포라는 정착을 꿈꾸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들의 삶에는 늘 결핍이라는 물이끼가 습진처럼 끼어 있다. 아무리 먹고살 만해도 그들의 가슴이 허기지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어도 늘 춥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설명한들 알 수 있을까.
 -p215 발췌-


아직도 변하지 않고 버젓이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일본에서,  <검은 모래>가 일본어로도 번역 출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말이죠. 칼보다 더 날카로운 펜끝으로 작가님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일본인들의 왜곡된 역사의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또 한 권의 책 <무국적자>도 어떤 내용일까 호기심 가득한 상태랍니다. 얼른 시간 내어 읽어야겠어요. 다음 우리 만남에 책을 들고 갈 테니 작가님의 멋진 사인 부탁해요. 앞으로 더 좋은 책으로 작가님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건강 잘 챙기면서 작품 쓰세요. 언제나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그럼 이만 줄일게요.


ㅡ2018년 9월 첫날, 가을의 문턱에서 당신의 독자로부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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