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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Feb 03. 2019

두물머리 겨울 풍경

금요일의 뚜벅이ㅡ20190201 -1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이 많았다. 마음 맞는 일행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두가 안 난다. 더 미루면 영영 못 할 것 같아서 일단 집을 나서는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첫 시작은 경의중앙선 팔달행 양수역으로 정했다. 항상 차를 몰고 단박에 도착하던 곳인데, 과연 전철을 타고 가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집에서 양수역까지 70분 걸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자가용이나 전철이나 비슷하다.

양수역에 내려서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는데, 1번 출구에 두물머리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두물머리를 가려고 나온 건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두물머리까지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전철역부터 족히 30분 이상은 산책로 따라 걸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날이 포근해서 걷는데 무리는 없었다.

강을 끼고 걷다보니 살얼음으로 뒤덮인 강과 꽁꽁 얼어붙은 마른 갈대와 연꽃 줄기가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음 덩이인지 눈덩이인지 알 수 없는 형체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종알종알 수다를 떨듯 울음소리를 내며 놀고 있는 고니들이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니 울음소리를 들었다.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 세 분이 카메라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무얼  찍으려는지 곧 알게 되었다. 고니떼가 푸드득 힘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새하얀 날개를 펼쳐 비상하는 모습은 새해 연하장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오리떼가 놀고 있는 강 앞에 앉아  물끄러미 오리들도 관찰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서로의 관계는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두 세마리씩 붙어다니고, 간혹 옆에 있는 녀석을 부리로 콕콕 쪼기도 했다. 물속에 있는 오리발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호들갑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여유롭게 발차기를 하며 물결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루  중 물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일 텐데, 저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까 궁금했다. 우리가 자신의 환경에 따라 그냥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내듯이 오리들도 저렇게 견디고 있구나 싶었다.

얼음에 갇혀 발이 묶인 나룻배,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낸 나무들, 누군가 아픈 다리를 쉬게 해 주던 의자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평일 한낮의 고요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이 되었다.

다리도 아프고 출출해서 전망좋은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수프와 모닝빵으로 허기를 면하고, 커피 한 잔을 놓고 책을 펼쳤다. 간간이 두물머리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경의중앙선은 지상으로 다니기 때문에 계절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전철이다. 집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완행열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샤 메데이로스의 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중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결코 일상을 바꾸지 않는 사람

위험을 무릅쓰고 옷 색깔을 바꾸지 않는 사람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이 시에서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제 낯선 길을 조금씩 다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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