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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겨울 풍경

금요일의 뚜벅이ㅡ20190201 -1

by 라향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이 많았다. 마음 맞는 일행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두가 안 난다. 더 미루면 영영 못 할 것 같아서 일단 집을 나서는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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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은 경의중앙선 팔달행 양수역으로 정했다. 항상 차를 몰고 단박에 도착하던 곳인데, 과연 전철을 타고 가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집에서 양수역까지 70분 걸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자가용이나 전철이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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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역에 내려서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는데, 1번 출구에 두물머리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두물머리를 가려고 나온 건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두물머리까지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전철역부터 족히 30분 이상은 산책로 따라 걸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날이 포근해서 걷는데 무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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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끼고 걷다보니 살얼음으로 뒤덮인 강과 꽁꽁 얼어붙은 마른 갈대와 연꽃 줄기가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음 덩이인지 눈덩이인지 알 수 없는 형체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종알종알 수다를 떨듯 울음소리를 내며 놀고 있는 고니들이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니 울음소리를 들었다.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 세 분이 카메라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무얼 찍으려는지 곧 알게 되었다. 고니떼가 푸드득 힘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새하얀 날개를 펼쳐 비상하는 모습은 새해 연하장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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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떼가 놀고 있는 강 앞에 앉아 물끄러미 오리들도 관찰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서로의 관계는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두마리씩 붙어다니고, 간혹 옆에 있는 녀석을 부리로 콕콕 쪼기도 했다. 물속에 있는 오리발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호들갑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여유롭게 발차기를 하며 물결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루 중 물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일 텐데, 저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까 궁금했다. 우리가 자신의 환경에 따라 그냥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내듯이 오리들도 저렇게 견디고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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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갇혀 발이 묶인 나룻배,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낸 나무들, 누군가 아픈 다리를 쉬게 해 주던 의자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평일 한낮의 고요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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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아프고 출출해서 전망좋은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수프와 모닝빵으로 허기를 면하고, 커피 한 잔을 놓고 책을 펼쳤다. 간간이 두물머리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경의중앙선은 지상으로 다니기 때문에 계절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전철이다. 집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완행열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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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 메데이로스의 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중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결코 일상을 바꾸지 않는 사람

위험을 무릅쓰고 옷 색깔을 바꾸지 않는 사람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이 시에서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제 낯선 길을 조금씩 다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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