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에세이스트] 행복한 라짜로 리뷰
나는 이전에 영화 포스터로 행복한 라짜로를 만났다. 순박한 시골 청년의 남자 인물과 뒤의 늑대. 그리고 자연과 도시의 풍경... 신비로운 분위기가 포스터에 가득 담겼다. 포스터를 보고 이 행복한 라짜로라는 영화의 내용이 궁금하여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이 반영이라도 한 듯, 시네마에세이스트 활동을 통해 행복한 라짜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모퉁이극장으로 향하면서 머릿속에서 “왜 행복한 라짜로일까?”, “정말 라짜로가 행복해서 행복한 라짜로일까?”, “아니면 행복하지는 않는데 역설인 것인가?” 궁금증을 안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행복한 라짜로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라짜로는 불행한 게 아닌가?”, “아니야. 중간중간에 라짜로는 행복했던 것 같아.”, “그렇다고 라짜로가 정말 행복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뒤죽박죽 복잡하게 했다.
그래서 행복한 라짜로를 보고 소감 나눔 할 때 “처음에는 영화를 보며 라짜로가 정말 영화 제목처럼 행복한지... 아니면 불행한데 행복한 건지 알고 싶었는데... 보다 보니 라짜로가 행복한 건지 아니면 불행한 건지 모르겠어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 소감을 나누고 난 뒤 다른 분들의 소감도 들은 후 집에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 “사실 라짜로는 인간이기에, 또한 나와 여느 사람들처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하지만 영화 속의 라짜로는 묵묵하게 본인 할 일을 하고, 자신만의 생각이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옛날 모습 그대로였기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편협한 시각에서 볼 수도 있으니,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고자 포털 사이트에 행복한 라짜로 후기를 검색해 봤다. 후기에 영화가 성경의 재해석이라는 내용을 보고 나서 내 머릿속이 유레카!를 외치듯 맑아졌다. 위의 궁금증과 왜 마지막에 라짜로는 죽었을까, 왜 탄크레디가 라짜로를 신으로 추앙했는가? 라짜로는 왜 성당에 들어가서 음악을 들었는가? 성당 음악은 왜 라짜로를 따라 움직였는가? 등 내용의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이 후기를 보고 나도 미약하지만 성경 내용에 대해 아는 것을 생각해 내어 영화와 연관 시켰다. 만약 라짜로가 위의 후기 내용처럼 다시 태어난 예수라고 생각하면 성경에서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과 초반에 라짜로가 밤새 지키던 마구간과 동일하다. 또한 라짜로는 자애를 베푸는 예수처럼 먹을 것 없던 길거리에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찾아주었다. 그가 다시 태어난 예수임을 알지 못하는 수녀들이 그를 쫓아냈지만 음악은 그를 알아보고 라짜로를 향해 소리를 들려주는 장면들... 다시 태어난 예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나는 그가 순수하고 평정심 있으며 때가 묻지 않은 면모를 보여주어 다시 태어난 예수, 아니면 예수 같은 인간으로 확신했다.
행복한 라짜로는 나에게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 생각의 순환,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다양한 해석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전에는 영화를 보고 나서 아~ 재밌었어. 재미없었어. 단순히 내가 받아들이는 재미로만 영화를 평가하는 단순 생각이 중점으로 두었다. 하지만 오늘 행복한 라짜로를 보며 내가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왜 인물이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가? 왜?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되물으니 입체적으로 영화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영화들과 지식들을 접하고 다시 행복한 라짜로를 보게 된다면 오늘과 다른, 좀 더 풍부한 생각을 하며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안녕 라짜로.
참고 사이트 https://blog.naver.com/chitm1/222322451128
본 리뷰는 시네마에세이스트 함수진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