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 리뷰 (3)

[시네마에세이스트] 행복한 라짜로 리뷰

by 모퉁이극장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인스타그램에서 김혜리 기자님의 게시물을 보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려오신다는 글이었다. 당장 스케줄을 찾아봤더니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과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행복한 라짜로>를 같이 상영한 뒤 김혜리 기자님의 토크까지 포함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천국보다 낯선>은 예전에 본 영화였지만 <행복한 라짜로>는 제목을 몇 번 들어보긴 했지만 잘 모르는 영화였다. 그러나 김혜리 기자님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신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기에 당장 남아있는 자리를 예매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던 기자님의 책도 챙겼다. <천국보다 낯선>은 이미 친한 사람들과 같이 본 뒤 영화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눈 터라 편하게 볼 수 있었지만 <행복한 라짜로>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보는 영화, 거기다 김혜리 기자님의 토크를 조금이라도 더 흥미롭게 듣기 위해 한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관람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모퉁이극장의 시네마에세이스트 활동으로 <행복한 라짜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미 작년에 집중해서 보기도 했고 이후 김혜리 기자님의 토크도 들었을뿐더러 당시의 기록도 상세히 해둔 덕분에 1년 전에 딱 한 번 본 영화였지만 거의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1년 전과 다른 것이 있었다. 바로 함께 보는 사람들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았을 때는 두 편을 연속으로 상영하고 김혜리 기자님의 토크까지 더해져 5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 때문인지 주로 ‘찐’영화팬들이 많았다. 그 자리에 모인 관객들은 긴 시간 동안 영화에만 집중하며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영화를 보았다. 그건 토크 시간에도 마찬가지라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기자님의 한마디라도 놓칠까 귀를 기울이며 기자님과 함께 영화를 분석하고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 관람에는 조금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았다.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폰을 자주 확인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나는 이미 행복한 라짜로를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작은 소음 속에서 <행복한 라짜로>를 보았기에 처음과는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었다.


정확한 시대를 가늠할 수도 없는 작은 마을 인비올리타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곳의 사람들은 후작 부인의 아래에서 소작농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중 라짜로는 조금 특이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모진 착취에도 군말 없이 따르지만 인비올리타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러던 어느 날 후작 부인의 아들의 가짜 납치 사건이 일어나고 처음에는 돈을 타내려던 자작극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인비올리타는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경찰에 의해 강제로 인비올리타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지만 그들의 어려운 생활은 소작농일 때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뒤 라짜로가 그들을 찾아오자 그들은 라짜로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라짜로이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라짜로라는 존재와 맞닿아있기에 내가 처음 <행복한 라짜로>를 볼 때에는 자연스럽게 라짜로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 영화를 볼 때 내가 주목한 것은 라짜로가 아니라 라짜로의 주변인들, 바로 인비올리타의 사람들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그들이 라짜로에게 너무 가혹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들도 피해자였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아주 좁은 마을에서 평생을 담배 농사만 하는 것이 유일한 인생이었던 사람들이다. 납치 사건 이후 아무런 준비 없이 인비올리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반기는 이도 없었다. 그들이 라짜로라는 약자를 대할 때 취하던 태도는 아주 익숙하다. 바로 소작농이던 자신들을 대하던 후작 부인과 비슷하다. 자신들을 착취하던 후작 부인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하기보다 연민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다른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주변에서 함께 보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찐’영화팬들과 함께 볼 때는 주변이 너무나도 조용해 마치 나 혼자 라짜로를 쫓아가는 것 같았지만 주변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적당한 소음과 함께 관람할 때는 내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조용한 환경 속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많은 것을 배웠어도 전부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결국은 사람들과 어울려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들으며 함께 할 때 훨씬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김혜리 기자님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하신 프로그램의 이름은 ‘엔딩, 크레딧’ 이었다. <천국보다 낯선>과 <행복한 라짜로>는 마지막 장면으로 완성되는 대표적인 영화였기에 너무나 알맞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김혜리 기자님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영화의 엔딩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나 이번에 모퉁이극장에서 관람할 때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라짜로의 바지 뒷주머니에 있는 새총을 비추자 내 주변에 앉아있던 분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 보았을 때는 그 장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고 또 나름대로 해석을 내리기도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것을 다 잊고 나도 그분들을 따라 웃었다. 영화 속에만 갇혀 있던 내가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즐긴 것이다. 나의 두 번째 <행복한 라짜로>는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더욱 완벽했다.



본 리뷰는 시네마에세이스트 정지현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