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마로나 리뷰 (1)

[시네마에세이스트] 환상의 마로나 리뷰

by 모퉁이극장

강아지를 어릴 적부터 무서워했다. 강아지보단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된 사람이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나도 함께 강아지 얘기를 하고, 강아지를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게 됐다. 이 사람이 좋아하는 건 나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환상의 마로나는 새로운 주인들과 함께한 마로나의 여정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마로나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인생을 함께 엿보면서 우리는 각자 다양한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강아지를 생각하기도, 누군가는 그저 영화의 감정을 따라가기도, 누군가는 마로나에게 자신을 이입하기도 한다. 나는 마지막 경우였다.


마로나의 애정이 매번 맹목적일 수는 없었다. 그대로가 좋은 강아지에 비해 인간은 변한다. 처음과 같은 애정을 쏟지 못한다. 결국 마로나는 매번 달라지는 인간들을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애정까지 전부 줘버린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마로나도 좌절감을 배운다. 하지만 솔랑주가 점점 자신에게 무관심해졌을 때도 마로나는 결국 솔랑주에게 뛰어가다 마지막을 겪는다. 마로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모든 인간을 사랑했다.


마로나의 주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로나가 ‘아나’였을 때였다. 주인을 아주 사랑하지만, 변해가는 모습에 불안해하다 주인을 위해 뛰쳐나가는 아나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인간의 ‘꿈’을 위해 아나는 자신의 인간과 함께 있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간을 위해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마로나의 모습을 보며 나를 이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앞서 말한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는 거의 매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오래 머물 사람이 아니라는 걸 둘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끝이 올 거란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가끔 그 끝을 그려보는데, 나도 아마 아나처럼 조용히 작별할 거란 생각을 한다. 아나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듯이.


그리고 지금은 상상이 안 되지만, 마로나가 그랬듯 또 우연치 않게 이스트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마로나처럼 아나가 아니라 사라가 될 것이다. 아나와 사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경험의 차이도 있다. 사라가 된 나는 아마 아나였던 시절의 기억을 가진 채로, 하지만 사라로서 이스트반에게 최선의 사랑을 쏟을 것이다. 하지만 아나이던 시절 배운 좌절감을 사라일 때도 기억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언젠가 마로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로나가 된 나는 여전히 이전의 아픔을 기억하겠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인간들을 사랑할 것이다.


마로나의 삶을 누군가는 슬프게만 볼 수도 있다. 마로나가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을 보며 맹목적이지만 보답받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도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마로나처럼 사랑하고 맹목적이다. 각자 아픔은 가지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사랑한다. 마로나의 삶은 항상 최선이었다.



본 리뷰는 시네마에세이스트 김다은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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