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기계의 풍경」 상영작 리뷰와 아트포스터
김정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는 부산의 지하철과 노동자의 모습을 하나의 풍경처럼 담아낸다. 그 풍경은 계절이 반복되듯 순환한다. 전동차가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어 선로를 향해 나아가는 장면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반듯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김정근의 카메라는 흔들리는 노동자의 삶을 향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공고 학생,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와 야간 정비사, 무인화의 물결 속에 부유하는 기관사와 사라진 매표소 직원까지. 앞으로 노동자가 될, 여전히 노동하고 있는, 노동의 기회를 빼앗긴 그들의 목소리는 쇳덩이의 마찰음과 뒤섞이며 풍경의 배경음처럼 자리매김한다. 오늘도 땅 위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지하 세계를 움직이는 그들의 삶에 시선을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
<언더그라운드>를 지배하는 회색빛 색채와 기계 사이에서 부단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김정근 감독은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에 이어 이번에는 부산 지하철의 노동 현장에 주목했다. 감독의 전작이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과 처절한 외침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언더그라운드>는 조금 다른 방식을 취한다. 기계를 둘러싼 노동자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과 그들을 연결하는 숏의 배열은 지하철의 운동과 닮아있다.
땅 위의 삶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태운 전동차가 직선으로 이어진 선로를 향해 움직인다. 아득한 지하 세계를 비추는 카메라는 수평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땅 아래의 노동 현장을 오롯이 기록한다. 카메라는 주로 정면에서 노동 현장을 비추어 반듯한 화면을 구성한다. 종횡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기계가 만들어낸 대칭과 반복, 움직이는 사람이 만들어낸 변화와 율동은 독특한 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 ‘수평적인 시선’이 단순히 시각적인 측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동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를 잇는 단단한 선로의 역할을 카메라가 수행하는 것이다. 계급을 막론하고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하 세계를 작동시키는 지하철의 구성원으로서 연결된다. 정규직 철도 기관사가 운행하는 전동차에 노동자가 될 공고 학생이 탑승하고, 다시 정거장에 도착한 전동차의 문에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의 모습이 비친다. 그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언더그라운드만의 흐름을 주조해 나간다.
지하 세계의 흐름은 노동 과정을 연결하는 숏의 배치에서 선연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차가운 새벽의 풍경부터 시작한다. 언더그라운드를 깨우는 첫차가 출발하고 전동차가 분해되고 재조립되는 장면이 삽입된다. 이어서 임무를 수행한 막차가 종점에 도달하고 아침이 밝으면 전동차는 다시 선로를 향해 나아간다. 각 장면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화 전반에 순환적인 흐름을 생성한다. 영화를 감싸는 이 흐름은 앞으로 노동자가 될 공고 학생의 모습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으로 전환시킨다. 김정근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순환적인 흐름이 흔들리는 지점에 주목한다. 반듯하고 정형화된 지하철의 움직임과 조응하던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 불안정한 노동자의 삶에 보다 면밀히 다가간다. 취업의 길목에서 다양한 이정표를 마주한 공고 학생, 일반직을 염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무인화의 물결 속에 부유하는 기관사, 과거 속으로 자취를 감춘 매표소 직원. 과거에 노동 기회를 빼앗긴, 현재 노동하고 있는, 미래에 노동자가 될 그들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기계음과 쇳덩이의 마찰음을 뚫고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것은 갈등과 투쟁의 목소리가 아닌 그들의 삶과 노동 자체를 진술하는 목소리다.
영화의 말미, 수평으로 이어진 레일을 달리던 지하철은 어두운 굴에 진입한다. 그리고 화면은 암전된다. 열차는 끊임없이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어 선로를 향해 나아가겠지만, 지하철을 둘러싼 수많은 노동자의 명맥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근심이 든다. 김정근 감독은 자신이 애정하는 부산 지하철의 과거와 현재를 담아내는 동시에 도래할 노동의 미래를 암시적으로 나타내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땅 위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언더그라운드는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창연한 회색빛의 풍경을 하고 있다.
(디펜더스 리뷰단 이지원)
2020년 10월 29일 인디펜던시아2020 섹션 2 상영회 / BNK부산은행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
이지원 - "영화와 미술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보면 늘 가슴이 벅찼습니다. 네모난 화면 속에 사라과 우정, 꿈과 희망, 슬픔과 그리움이 담겨있다는 것이 참 아름답고 신비로웠습니다."
다음주 화요일(11/3) 인디펜던시아 섹션 3: [불안의 빛]에서 단편영화 4편이 상영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모퉁이 극장 SNS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해주세요!!
「노동과 기계의 풍경」[]{「노동과 기계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