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에세이스트] 끝없음에 관하여 리뷰 (2)

[시네마에세이스트] 끝없음에 관하여 리뷰

by 모퉁이극장

나는 눈이 좋지 않은데, 이 영화를 보는 날 렌즈를 잃어버려 겨우 사람 형체만 보이는 시력인 상태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는 아주 단조로웠다. 평소의 시각적인 자극을 중요시 여기는 나라면, 길고 장면 전환 없는 이 그림 같은 영화를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자막도 눈을 찌푸려야 겨우 보이고, 인물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디테일보단 분위기와 청각적인 부분을 신경 쓰면서 보게 되면 이 영화를 아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 영화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느낌이다. 더 나아가 렌즈를 끼지 않은 나에겐 이 조각이 맞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그냥 내 느낌대로 아무렇게 맞추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맥락이 이어지는 스토리에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겠지만, 매번 다른 사람들이 다른 행동을 하는 조각처럼 쪼개진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냥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적으로 영화를 보는 동안 차분하지만 매 장면마다 다양한 느낌이 어디로 튈 지도 모르게 아무렇게 떠올랐다. 마치 31가지 맛을 고르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입 안에서 톡톡 튀는 맛 아이스크림 같았다. 그저 영화가 느껴지는 대로 밝은 장면은 밝은 느낌으로, 어두운 장면은 어두운 대로, 잘 모르겠는 부분은 굳이 생각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느꼈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들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영화들은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객이 따라가면서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돼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놓치는 부분은 놓치는 대로, 붙잡고 싶은 장면은 붙잡으면서 조용히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 있었다. 발단도 절정도 결말도 없는 기분이었다. 문득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아무 인물의 아무 순간을 골라 보여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생활하는 모든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일기를 쓸 때도 모든 순간을 쓰기 보다는 유독 기억에 남는 부분만 기록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24시간 흘러가고 있고,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만든다. 하지만 영화들은 보통 인물들의 중심적인 사건 위주로 극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 영화들이 (의도적으로) 놓쳐 왔던 랜덤의 순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다양한 순간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의 아무 순간을 생각해보게 됐다. 영화 같은 순간이 아닌 정말 순간의 상황 속 일상 속의 우리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 보다 나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지금까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었다. 이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의 짧은 관람 후기와 영화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감상 또한 매우 주관적이고 다양했다. 그리고 이후에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한 내용과 비슷한 부분도 아예 다른 부분도 있다고 생각됐다. 예전 같았으면 평론가들의 말이 무조건 정답이고 영화에 대한 해석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마다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고, 영화를 통해 투영하는 자신의 세계 또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내 감상이 얼마나 개인적인지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영화는 잘게 조각난 장면들을 어떻게 보는 지에 따라 각자의 감상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들으면서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영화에 대한 내 관점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그렇기에 이번 시네마에세이스트 활동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본 리뷰는 시네마에세이스트 김다은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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