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에세이스트 워크숍 참여 후기
인생 처음으로 아빠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던 때가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나, 서면 대한극장에서 하는 <쉰들러 리스트>가 내 인생의 첫 영화관 영화였다. 흑백 영화인데다 러닝타임도 길고 심지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내용이라 중학생이 보기엔 어렵고 재미없는 영화이긴 했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는 흥분, 영사기 불빛과 아빠와 둘이 영화관 데이트를 한다는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땐 지금처럼 체인 극장이 극장가를 점령하기 전이었고, 영화관이 아니면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때라 영화관에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서 설레며 영화를 보았다.
이제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경로도 수단도 다양해졌다. 영화를 아무 때나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보니 오히려 어린 시절만큼 영화를 집중해서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넷플릭스 앱을 켜고 어떤 영화가 올라와 있나 살펴보다가 플레이해보고 초반에 좀 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중단하고 다른 영화를 찾아본다. 시간이 부족하면 1.25배속이나 1.5배속으로 빨리해서 후루룩 보기도 한다. 영화를 ‘감상’ 한다기 보다 그냥 ‘보았다’에 방점이 있는 시간 때우기용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최근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다 보니 영화를 안 본지 오래되었다. 서평 쓰는 것 말고 다른 매개물을 이용한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인스타그램에서 시네마에세이스트 모집 피드를 보게 되었다. 책과 달리 영화는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제한, 시간과 청각을 동원해야 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순간순간 드는 느낌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를 통해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청을 하고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을 때 무척 기뻤다.
영화 보기 전 워크숍에서 산책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 후 각자 첫 문장을 쓰고 나서 다른 이의 첫 문장으로 한편의 글을 써보는 시간은 처음 해보는 글쓰기 방식이라 걱정되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세 편의 영화 <행복한 라짜로>, <환상의 마로나>, <끝없음에 관하여>는 시네마에세이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영화였다. <환상의 마로나>는 기존에 내가 알던 디즈니나 픽사의 애니메이션과 완전히 다른 그림체의 애니메이션이어서 신선하고 좋았다. <끝없음에 관하여>도 32점의 그림을 보는 듯한 독특한 형식의 영화여서 신기했다. <행복한 라짜로>도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글을 써야 해서 내가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 집중해서 보았고, 그렇게 영화를 생각하면서 자세히 보는 경험은 내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이번 행사 참여를 통해 ‘모퉁이극장’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영화 마치고 관객들과 감상을 나누는 모습이 좋았다.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영화를 보면 영화를 더 열심히 보게 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앞으로는 영화 볼 때마다 글을 써야겠다. 3편의 영화와 글로 ‘시네마에세이스트’는 끝나겠지만, 이 경험은 내게 소중한 자신으로 남을 것이다.
또 다른 기회를 통해 모퉁이극장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프로그램 열어주시고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참여 후기는 시네마에세이스트 모리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