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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죽이면서 산다

[시네마에세이스트] 행복한 라짜로 리뷰

by 모퉁이극장

나는 살인자다. 직접 사람을 손으로 죽이지 않았을 뿐, 오늘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짓밟고 죽이며 지금까지 살아왔는가를 생각하면 절로 입이 다물어진다. 어린아이들의 노동 착취는 한 잔의 커피 잔에 담겨 너무나 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오늘 식탁을 살펴보면 나를 위해 희생된 동물들이 많다. 나는 어떤 권리로 그들을 아무렇게 않게 죽이고 소비할 수 있는 걸까.


한때 동물권을 생각하며 채식 지향적 삶을 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나는 비겁하게 중간에 어정쩡하게 발 걸쳐 있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고기를 먹고, 또 유제품은 끊기가 어려워서 적당히 타협하며 먹었다. 그러고는 동물을, 환경을 위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위선자의 삶이었다. 그것도 잠시뿐, 지금은 그냥저냥 살고 있다.

이쯤 되니 드는 생각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착취하며 살게 되게 만들어진 것 같다. 우리는 태생부터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살 수 있었고, 엄마의 죽어가는 희생 속에서 생을 부여받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 속에서, 어떤 것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이렇듯 사람들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착취하고, 그것을 대물림하며 산다.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대부분의 약자는 자신들의 부당함을 원인 제공자인 가해자, 즉 강자에게 향하지 못하고, 자신도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약자에게 향하는 굴레가 반복된다. 하지만 영화 <행복한 라짜로>에서는 유일하게 그러지 않는 인물이 나온다. 바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라짜로’가 그렇다.

착취는 착취를 낳는다고 말할 때,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라짜로가 그렇다고 했을 때 그는 신으로 대변되는 듯한 인물이라고 느껴졌다. 적어도 인간 중에서는 그런 사람은 없을 테니까.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당연히 죽었어야 할 라짜로가 죽지 않고, 혼자만 시간의 흐름을 빗겨 살아있는 것과 마지막 장면인 은행에서의 몰매를 맞는 장면들을 보며 내 추측엔 힘이 실어졌다.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유일하게 ‘행복’하고, 착취를 낳지 않는 그가 신처럼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모진 삶을, 누구보다 가난하고 멍청하리만큼 순수하게 살아온 그가 사실 가장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 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던 라짜로가 늙지 않고 살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도 라짜로를 대단히 여기거나 신성하게 여기지 않는다. 여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행동한다. 끊임없이 착취를 일삼는 마을 사람들과 그들과 대비되는 라짜로를 보며 우리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씁쓸하기도 하고 민낯이 드러난 것 같이 부끄럽기도 했다.


사람들은 늑대의 무시무시한 겉모습만 보고 무서워서 피한다. 하지만 그 늑대는 무리에서 이탈된 한 마리의 늑대였을 뿐. 차를 피해 이리저리 힘없이 비틀거리며 걷는 늑대를 보며 라짜로가 떠올랐다. 절벽에 떨어졌을 때 늑대가 라짜로를 잡아먹지 않은 까닭은 본인과 동일시해서 그렇지 않을까.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선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던 라짜로를 우리는 몰라본다. 지금 순간에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생계를 사느라, 자신의 이익을 챙기느라, 눈앞의 재미를 쫓느라 외면했던 이를 한번 죽였으면 그걸로 족한 것 같다. 우리는 결국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겠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자. 인정하고 그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쳐다보자. 적어도 그러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 되어있지 않을까.


내 모습을 받아들이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잣대를 들이밀 자격이 없다. 그것들은 이전에 이미 내가 행한 짓이고 드러나지 않은, 혹은 드러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냥 입 다물고 나를 바라보게 된다. 감히 누구도 재단할 수 없다. 그러니 착취가 착취를 낳는 불평등한 이 세계에서, 누군가를 욕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거기서 내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라짜로를 기억하며.

본 리뷰는 시네마에세이스트 김민주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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