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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Oct 13. 2024

괜찮아, 가끔은 과식도 필요해

지금은 나의 과식시기

'나 지금 과식하고 있는 것 같아'


잠실철교를 지나는 퇴근길 지하철, 붉게 지는 석양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과식'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 순간부터

목구멍까지 가득 차올라서 더 이상 넘기지 못할 것 같은데 꾸역꾸역 무언갈 넣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나의 과식은 커리어였다.

이 과식을 욕심이라 불러야 할지 자기 발전이라 불러야 할지 애매하긴 하지만 말이다.


배움에 대한 갈망과 더 넓은 스택을 가지고 싶어 도전한 이직,

내 생각보다 더 큰 어려움과 버거움에 난 허덕이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바빠지니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엄마로서의 나도 흔들리고 있었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결정이 나를 더부룩하게 하고

분명 나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토해내고 나야 내 속은 편해질 것만 같았다.


아아

무심코 내가 나를 아프게 한다.

'내 분수에 비해 너무 큰 도전이었나'







나는 분수에 맞게 살으라는 말을 정말 싫어했다.


내 분수가 어디쯤인지 얼마큼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 누가 정할 수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그것들은 내가 나 자신과 타협하고 결정하는 것들이지

이미 한계가 정해지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다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도전이 '과식'이라고 생각했던 그날 이후로

자기 '분수'라는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됐다.


나의 분수는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도전들을 극복했느냐 포기했느냐에 따라가 아니라

그 도전으로 인해 내가 무얼 깨달았는가로 결정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내가 분수라고 생각했던 나의 그릇들은 늘 도전 앞에서 항상 깨부숴 지고 다시 만들어졌다.

그 크기와 모양은 늘 제각각이었지만.


그러니 새로운 내가 된다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겠지.

그것이 성장의 본질일 테니까.

그 누구라도 힘들고, 버거웠을 테니, 나 역시 그 속에서 허덕이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지금 과식이라고 느껴지는 이 감정들도 

내가 분수에 맞지 않는 도전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도전은 늘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라고.

그러니 이만하면 괜찮다고, 장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이제 '분수에 맞게 살라'는 말은 나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분수라는 것은 단순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도전 속에서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되돌아보면 내가 한계라고 생각했던 분수라는 그릇들은 

늘 도전 앞에서 깨졌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릇이 다시 자리 잡았다.

그 크기와 모양은 도전할 때마다 달랐지만, 새롭게 태어나는 그릇들은 내게 작은 의미로 남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느끼는 버거움도 

결국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여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되새겨본다.

이 도전이 끝났을 때 내게 다가올 새로운 그릇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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