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슬픔에게 말합니다. 이젠 잘할게.
나의 소중한 누군가가 슬픈 얼굴로 슬픈 목소리를 하며 다가올 때
그리고 그 슬픔의 깊이가 저 아래 까마득하게 깊을 때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나는 나의 슬픔에게도 어쩔 줄 몰라했으니까.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와 이별하던 날도
가시 돋친 말로 지쳐 돌아온 날도
쓰레기통에 지난 추억을 던져버리고 온 날도
자의 반 타의 반 꿈을 접어야 했던 날도
나는 그냥
그냥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흘리는 눈물이 베개를 천천히 적시고
그 눈물이 다시 마를 때쯤 밝아진 방에서
퉁퉁부은 내 눈만 빼면
좀 나아진 것 같아서.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무렵
나의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그 엄마가 사랑하는 엄마
우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 계절이 언제였는지
마지막 모습이 어땠는지
그런 기억들보다 내게 선명하게 남은 건
엄마의 한마디였다.
“괜찮냐는 그 한마디도 없니”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온 엄마에게 난 그저 평소처럼
오늘 저녁은 뭔지 물어보고 있었나 보다.
슬픔을 모른척하는 게 그게 난 위해주는 줄 알고.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혼자 아무도 모르게 울고 나면
괜찮아지는 줄 알고.
아무도 모르게 울어야 슬픔을 이기는 줄 알았다.
아마도 난 슬픈 이를 위로하는 최악의 방법을
최선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저 나만 모른 척해주면 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웃는다고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되지 않는데
슬픈이의 곁에 있어준다는 게
나름대로 침묵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슬픈 이를 더 멀게 느껴지게 하는 일이었다.
곁에서 마음을 읽어주는 일
아마도 내가 하고 싶었던 곁에 있어주기는
그런 거였을 텐데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의 슬픔에게도 이젠 더 이상
혼자 울게 두지 않겠다고 했다.
슬픔은 이겨보려 감춰보려 하는 게 아니라
읽어보고 드러내 보는 게 맞다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