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게 되었어요

아주 평범한 말이 아주 어려운

by 유로지

작년 연말의 어느 겨울날 밤, 카페에 앉아 창밖의 하얀 눈을 바라보며 한참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했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냐는 남편의 말에 시계를 보니 벌써 30분이나 지나있었다. 이토록 작고 사소한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웃기고 서글펐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사건의 발단은 아이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음악학원을 다니면서부터였다. 유치원에서 걸어서 3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곳이라 픽업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친구네 사정이 생겨 두 아이의 픽업을 내가 하게 되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고작 3분 거리라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만두기로 하면서부터 생겼다. 내 고민의 질문은 여기 있었다. “우리가 그만두게 되면 친구의 픽업은 어떻게 되지?” 그 집 부부는 아이를 픽업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당장 누구에도 도움을 구해보기도 어려워 보였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사실 그들의 사정은 내가 감당할 영역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인지 모르게 악역이 된 것만 같았고 이 불편한 상황을 대면해야 하는 현실이 어지럽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 쓰고 혹여나 오해살만 한 부분은 없을지 보고 또 보다가 내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엄마 뒤에 나는 숨어 애써 선생님의 표정을 모른 척 외면했다. 내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인사하자는 선생님의 말에도 마지막이니 얼른 선생님께 인사하라는 엄마의 재촉에도 선생님의 얼굴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미안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만두기 전부터 엄마는 오늘 가서 선생님께 이번 달까지만 한다고 말하라고 했지만 난 말할 수 없었다. 피아노가 너무 간절했던 것도 아니었다. 사실 그만두는 것 자체는 문제없었다.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 상황 자체였다. 결국 나는 마지막 수업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마쳤고 결국 엄마가 학원까지 와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뒤에 서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더 흐른 지금, 카페 앉아 문자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하는 순간에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 것은 왜일까. 어쩌면 9살 어린아이인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생존 방식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필요나 감정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불편한 말은 꺼내지 않도록, 갈등의 씨앗이 될 만한 건 미리 삼켜버리도록. 하지만 오랫동안 날 지켰던 이 생존방식이 이제 날 숨 막히게 하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