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유지군이 지키지 못했던 것
어릴 적부터 나는 자칭 우리 집의 평화유지군이었다. 내가 왜 그런 역할을 자처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나는 내 역할에 꽤 만족스러웠다. 밖에서는 조용하고 튀지 않는 내가 집에서는 밝았다. 그게 내 역할이었으니까. 밖에서의 고민거리, 슬픔, 힘든 것들도 집에 들어오기 전에 현관문 앞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어 버렸다. 지금 와서 엄마가 '너는 사춘기도 없이 잘 지나갔다' 하는 거 보면 내 기억이 맞다. 아무튼 그렇다.
사실 평화유지군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 집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걱정하게 할 만한 결핍도 없었고 폭력도 없었다. 친척 집에서 부부싸움으로 밥솥이 깨지고 이웃집에서 가정폭력으로 누군가 경찰서에 가던 날에도 우리 집엔 문제가 없었다. 대신 우리 집에는 침묵과 닫힌 방문이 있었다.
나는 그 방문을 두드리지 않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엄마의 눈가가 붉어져있거나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거르시는 날에도 나는 묻지 않았다. 도통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동생에게 모른 척하자고 했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아무 대화나 나누다가 잠들었다. 언니가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악을 쓰던 날에도, 동생이 밥을 먹다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던 날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는 못 본 척 모른 척이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면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었다. 그게 평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한테도 같은 방식을 쓰고 있었다. 나의 깊은 한숨은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운 짐을 안겨줄 수 있는 위험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자 나는 한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때는 슬픔에도 순서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가족을 향해 쓰던 모른 척이 어느 순간 나를 향하고 있었다. 밖을 향할 땐 평화유지였는데, 안을 향하니 나를 지우는 일이 됐다.
과거로 돌아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나를 붙잡고 말하고 싶다. 침묵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슬픔에는 순서가 없다고. 하지만 이 작고 어린 평화유지군은 조용히 삼켜내면서 안도했다. 평화가 찾아왔다고 기뻐하면서. 그렇게 나는 묻지 않고, 모른 척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 생애 가장 조용한 위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