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깃꾸깃 접어 삼킨 마음
집안사정으로 전학을 자주 다녔는데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고등학생 무렵 서울로 전학을 왔다. 지방에서는 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어서 부모님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서울로 전학 와 처음으로 받아본 내 성적표는 처참했다. 그날 이후로 다소 이상한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성적표를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않기로 다짐한 것이다.
앞에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해낼 거라고 말하고 뒤에서는 늘 전전긍긍했다. 걱정만큼 성적도 올라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성적표가 나오면 학교 사물함 깊숙이 넣어두기 바빴다. 어쩌면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었을까. 난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그러다 고3이 되던 무렵, 교실밖 창문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에서 누군가 떨어지는 환영을 보았다.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내 나는 틈만 나면 누군가 창문에서 떨어지는 걸 봤다. 종종 책상에 엎드려 아무 표정도 소리도 없는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는지도 모르는 눈물이었다. 그러다 여름쯤 내가 갑자기 창문밖으로 뛰어내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하루 종일 맴돌았다. 가을쯤 되자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지막 단어가 뭐였는지 자꾸 다시 확인하면서 강박증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장 병원에 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강박적 생각들이 내 곁에 계속 맴돌았다.
어느 날 공부하러 간 도서관에서 불현듯 도서열람실로 방향을 바꿨다. 그날 온종일 정신건강에 관한 책들을 펼쳐두고 강박장애 챕터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침투사고(Intrusive thoughts) — 원하지 않는 무섭고 끔찍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침투하는 것. 그리고 그 옆에 쓰여 있었다. 실제로 절대 그걸 하지 않을 사람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오히려 착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나타나며 무섭다는 것 자체가 그러지 않을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작은 희망을 보았다. 이후 점차 내 마음이 괜찮아지기 시작했고 특별할 것 없이 평소와 비슷한 수능 점수를 받았다. 꽁꽁 숨긴 수능 성적표를 언니가 용케 찾아내 결국 내 점수가 부모님 귀에 들어갔고 그렇게 내 힘들었던 학창 시절도 막을 내렸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팠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아무렇게나 꾸깃 접어서는 혼자 삼켜버렸다. 꽁꽁 숨기면 괜찮았던 성적표처럼 내 아픔도 그러길 바랐나 보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그때의 나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말하면 문제가 되니까. 나는 아무 문제도 만들고 싶지 않거든’. 그때 나는 알았어야 했다. 문제없는 집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숨긴 집이라는 걸.
나는 내 고통이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아프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을 골랐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냥 두면,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괜찮아질 거라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틀렸다는 걸 알게 된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