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이기는 최악의 방법

모른 척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by 유로지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댁에 내려갔던 날, 집 마당에서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보았다. 할머니댁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강아지랑 정이 들어버린 나는 우리 집에 데려가자고 졸랐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는 집이라 엄마가 절대 반대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엄마는 허락을 해줬다. 나중에 들었는데 당시 취업준비가 길어져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던 나를 위해 허락해 준 것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뭉이’ 내가 강아지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가족들도 시간이 지나자 뭉이 없는 집은 상상할 수도 없게 변해갔다. 우리는 가진 사랑을 몽땅 뭉이에게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도 취업을 하자 뭉이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 베란다에서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뭉이가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아빠가 제안을 했다. 뭉이를 다시 시골 할머니댁으로 보내는 게 어떠냐고.


모두가 결사코 반대했지만 그래서 누가 뭉이를 돌볼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긴 낮잠을 자고 일어난 어느 주말, 뭉이는 이미 할머니댁으로 출발하고 없었다. 종종 아빠가 시골에 내려갈 일이 있어 갈 때마다 사진이나 영상을 받았고 도시에 지낼 때와는 다르게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에 내가 잘못 생각했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간 듯 보였다. 그때는.


어느 퇴근길에 아빠가 지하철역 앞으로 마중을 나와있다는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빠를 발견하고는 달려갔는데 아빠의 첫마디는 ‘집에 가면 모른척해라’였다. 뭘 모른 척하냐는 나의 물음에 아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할머니가 뭉이를 어디론가 보냈다 는 말을 했다. 그 뒤로는 우리의 대화는 이랬다. 언니와 엄마가 하루 종일 울음을 쏟아냈다는 집의 분위기, 나까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아빠의 당부. 아빠는 내 슬픔이 채 올라오기도 전에 입을 막았다. 내 슬픔은 뒤로 밀렸다. 평화유지군에게 지켜야 할 것은 슬픔이 아니라 평화니까 나는 슬퍼하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하고 고요한 적막이 도는 집으로 들어와 말없이 내 방문을 닫았다. 그러곤 한참을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울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그날 이후로 우리 집에서 뭉이의 이름은 금지어가 되었고 그 뒤로 며칠 더 엄마와 언니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끼니를 거르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평소처럼 행동하던 나를 보고 엄마와 언니는 오만 정이 다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뭉이가 어디로 보내졌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 끝까지 묻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밤새 아무도 모르게 울어도 평화유지군이라는 내 본분에 충실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른척하라는 아빠의 말처럼 그냥 가만히 두면 괜찮아질 줄 알았던 아픔은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10여 년이 더 지난 지금도 아직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니까. 그리고 어쩌면 아빠도 그날 많이 슬펐을 것이다. 내게 모른 척 하라며 당부하던 아빠의 모습, 아빠도 우리 집의 평화유지군이었다.


가만히 두면 괜찮아진다는 것은 틀렸다. 침묵이 만들어낸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기로 한 합의였다. 누군가의 슬픔을 못 본 척 덮어두면 그 슬픔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굳어버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마저도 모른 척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다 해져버린 전투복을 입고서 소리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슬픔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런데 왜 전혀 괜찮아지지 않는 거냐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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