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대신 작은 매듭 하나
사회초년생이 겪는 회사생활이 그렇듯 첫 입사한 회사에서 이리저리 부딪혀가며 사회의 쓴맛을 봤다. 그래도 난 꽤 잘 지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선 뭔가 자꾸 쌓이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애써 눈을 감아버린 걸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서서히 회사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람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너무 잘 지냈다. 나도 지금 그 점이 의문스럽다. 괴롭히며 힘들게 하던 사람에게도 아무 탓을 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에 매진하고 가끔 농담도 던졌다.
어느 날은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지진인가? 싶어 복도로 나왔지만 여전히 바닥이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서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고.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불안에 떨고 터덜터덜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그러다 종종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갑자기 느리게 혹은 빠르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심장의 움직임에 나의 공포는 점점 극에 달했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도대체 그렇게 착한 직원을 누가 나가게 했데?’ 내가 퇴사한 뒤 무성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팀 이동도 휴직도 뭐든 지원해 주겠다고 했지만 나간다는 직원. 이직도 아니고 앞으로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나간다는 직원. 그렇게 나는 힘들다고 하소연도 못해보고 화도 못 내보고 그냥 사라지기로 했다. 처음엔 회피했다고 생각되어 나를 자책했다. 하지만 생각해 볼수록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것뿐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오히려 측은하게 느껴졌다.
사실은 말하기 싫었다. 말하는 순간 나의 감정을 마주해야 하니까. 뿐만 아니다. 상대의 감정과 그에 따른 이해까지 감당해야 하니까. 난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걸 연습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냥 모른 척 넘기면 모든 게 깨끗해지리라. 그들은 나를 잊을 테고 나도 그들을 잊을 것이다. 이대로 퇴사하고 나가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나오니 전혀 깨끗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잊었는지 몰라도 나는 종종 회사사람들이 꿈에 나와서 날 괴롭혔다. 그런 밤이면 더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그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엄마는 당연히 평소와 같지 않으셨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했는데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밝게 엄마 옆에서 말을 걸었다. 모른 척해주는 게 위로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엄마가 말했다. "너는 엄마한테 괜찮냐고 한마디 묻지를 않냐." 순간 머리가 띵했다. ‘엄마, 할머니 잘 보내드리고 왔어?’ 그 말 한마디면 됐는데. 근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내가 틀렸다는 걸. 아무렇지 않은 척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말하지 않은 것들은 깨끗해지지 않았고, 흔적 없이 날아간 듯 보였지만 어느새 다시 내 마음 구석구석 가라앉아 곰팡이같이 자라났다.
퇴사 이후 한동안 쉬다가 운 좋게 두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그놈의 인관관계가 힘들어 퇴사했는데 고작 2년을 쉬었다고 다시 잘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작은 다짐을 하나 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생기는 인연의 끈, 그 끈 위에 상처가 나거나 얼룩을 묻을 때면 매듭이 필요하다. 하지만 늘 나는 매듭짓는 대신에 그냥 그대로 두다가 끈을 잘라버리곤 했다. 그래서 이번엔 꼭 매듭을 짓겠다고 생각했다.
3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면서 왜 갑자기 깨달음을 느꼈냐고 물으면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첫 퇴사와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내가 알게 된 건, 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전학을 자주 다니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전학을 가는 것처럼 훌쩍 떠나버리면, 관계에 쌓인 서운함과 혹은 애정까지 다 사라지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더욱 떠나는 마당에 뭘 더 이야기해라고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제 그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엔 달라져야만 했다. 조금 두렵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