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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May 23. 2023

양해는 가족에게 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부라서 어렵다

기침을 콜록콜록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자면서도 기침을 하더니

기침을 하느라 잠도 못 들던 밤,

자다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고 눕히려는데 불덩이 같이 뜨거운 몸이 심상치 않았다.


체온을 재보니 이미 39도였고 곧바로 해열제를 먹였다.

해열제와 따뜻한 물을 먹고 지쳐 쓰러지듯 다시 잠든 아기.

다급히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아기가 아프네, 열이 39도야'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어떤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이렇게 한밤 중에 고열이 지속되면 큰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말속에 나는 '그러니까 얼른 와'라는 말도 숨긴 채 보냈다.


그게 내가 예상하고 기대한 아빠의 모습이었으니까.

누구라도 당연히 아빠라면 그렇게 할 테니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라는

나의 착각.


착각은 역시 착각이었다.


남편은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살금살금 들어와

내 눈치를 살핀다.

아이가 어떤지 묻지도 않고 오히려 내 눈치를 보며 들어오는 모습에

실망스러운 감정이 물밀듯 들어왔다.

아이가 어떤지 궁금하지도 않나? 싶은 의구심에 할 말을 잃었다.


자려고 옆에 누웠는데 불현듯 머릿속에

아이는 끙끙대며 아프고 나는 그 옆에서 같이 울며 정신없이 보낸 그 몇 시간.

그 몇 시간 우리 가족은 서로 다른 시간을 보냈구나 싶은 마음에 나는 몸서리치며 침대 밖으로 나왔다.


마음 같아선 와다다 미운 말들을 쏟아내고 싶은데

나는 그냥 입을 꾹 닫았다.

섣부르게 내밷은 말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일상을 시작하며 나는 오후쯤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은 꼭 일찍 갈게, 밥만 먹고 갈 거야'


또 한 번 기대를 했다.

그래 어제 그렇게 실수를 했으니 오늘은 일찍 오겠지


내가 아는 밥은 한 시간이면 뚝딱이던데

또다시 시계는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왜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걸까

그 말은 회사 사람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회사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왜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하는가?


그런데 내 머릿속에 한편에선 또 이런 말이 들린다.

부부라는 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나야 하는 거냐고.

가끔 술 먹고 늦게 들어올 수 있고 그날이 하필 아이가 아픈 날 일수 있는 거라고.

결국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지지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또 화를 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화에서 감정을 도려내고 이성만 남게 내버려 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내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된 후에야 나는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애가 아픈데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는 말 대신

애기 아빠라면 당장 뛰쳐나왔어야지 말 대신

나라면 절대 그렇게 안했다 라는 말 대신


아기가 아프면 혹시 만약의 상황에

운전해야 할 상황도 있을 텐데

당신이 술을 먹고 있으면 난 너무 불안하다고.


남편은 놀란 눈으로 날 보더니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고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평화주의자 부부의 싸움은 오늘도 시작도 못해보고 이렇게 끝이 났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지 말라고 말해야지 라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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