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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Jan 11. 2023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스케이트를 배우는 법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내가 중학생일 무렵 내가 살던 동네에는 아이스링크장이 있었다. 걸어서도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에 학교에서도 소풍으로 자주 가고 친구들과도 주말에 몇 번씩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와서 스케이트를 처음 타게 되었는데 첫 스케이트를 타던 날 발끝에서 느껴지는 낯설 느낌에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핑계라면 핑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릴 적 자전거 사고로 빠른 속도를 내는 무엇이던 겁을 먼저 내는 내게 스케이트도 일종의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손을 잡아 이끌어주고 또 벽을 잡고 걸어봐도 나는 늘 거북이보다 느린 걸음으로 스케이트 장을 겨우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내가 그 동네에 살며 스케이트장을 적어도 10번은 갔을 텐데 난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날 더 조심하게 만들고 움츠러들게 했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느라 나는 예민해졌다. 이런 예민함으로는 절대 넘어질 수 없었다. 왜냐면 이미 내 머릿속에 위험한 시나리오는 다 배제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지만 내 스케이트 실력은 단 한걸음도 더 나아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엄마, 나 스케이트는 못 타는데 한 번도 안 넘어진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은 '넘어져야 배울 수 있지' 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어린 나는 그 말을 이해 못 했던 것 같다. 이해했다면 지금쯤 스케이트는 껌이라 생각하고 엄청 잘 타고 다녔을 테니까.


그 말을 이해하게 된 건 20년이 더 흐른 어느 날, 바로 오늘이다.


여느 날과 같이 마찬가지로 카페에 앉아 채용공고를 보고 있는데, 채용조건에 단 한 줄이라도 나랑 맞지 않는 조건이 있으면 미리 거르고 보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내 머릿속엔 이미 어쩌다 서류는 통과해도 면접 가서 여기저기 무섭게 날아오는 질문들에 온몸이 찔려 아파하는 내 모습을 그리고 있다. 


넘어지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넘어지는 게 두렵고 무섭다. 넘어져 있는 날 보는 나도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넘어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넘어지지 않으면 일어서는 방법도 모를 것이고 또다시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난 제자리 일 것이다. 


우리 집 꼬맹이도 수백 번을 넘어져가며 걸음마를 배우고 이제 뛰어다니는데 나는 어쩌자고 우리 집 꼬맹이보다 더 겁이 많을까. 


아직도 제자리에 서서 겁먹고 있는 나에게 넘어지지 말라고 다치면 아프다고 말해주는 대신에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쳐도 금방 나을 거라고 그리고 넘어져서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은 이제 다음 걸음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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