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로지 May 28. 2023

평일 한낮에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체

백수일 때 내가 사랑한 시간, 오후 3시


나의 첫 회사 사무실은 굉장히 높은 건물에 있었는데

가끔 너무 퇴근하고 싶을 때면 회사 내 카페테리아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종종 멍 때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창 밖 하천을 따라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 당시 회사 근처에는 천을 기준으로 산책길이 양 옆에 있었는데

점심시간 1시간 안에 밥과 커피 그리고 산책을 해결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나와달리

여유롭게 그 시간을 누리며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있었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 어른들을 제외하고도 젊은 친구들이나

한창 일할 나이처럼 보이는 중년들까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길래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복을 받았나 싶었다.


"나도 평일 한낮에 여유롭게 산책이나 해봤으면..."


머릿속으로 한참을 상상에 빠져본다.

여유롭게 10시쯤 일어나 씻고

집 앞 잔디밭 벤치에 앉아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나.

그 옆엔 단골집 커피도 한 잔 있어야 겠지.


이렇게 소소한 상상이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꿈 같았다.


일이 생겨 휴가를 쓸 때면 그 시간 아까워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고 바삐 지내고

주말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이다 보니

한가로운 공원이나 산책길을 즐기려면 평일이 딱인데 말이다.



그러다 백수가 되어 자유인간(?) 이 된 이후로

나는 내가 알던 시간과 세계가 너무나도 한정적이고 좁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직장인들이 하나 둘 출근을 하고 나면 거리가 한산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거리는 아이들로 다시 북적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초등학생들도 이른 등원을 하고 초중고 학생들의 등원이 끝나고 나면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가들이 등원을 한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질 것 같던 거리는

이제 막 오픈을 준비하고 영업을 시작하는 사장님들로 바빠지고


슈퍼마켓은 퇴근시간쯤 붐빌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오전부터 북적북적하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내 시야는 회사 안으로 좁혀지고

회사 밖 세상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 말고도 정말 많고 다양한 생태계들이 살아 숨 쉬지만

정작 나는 그 좁은 사무실 세상을 다라고 생각하며 지내왔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내가 좋아했던 시간은 오후 3-4시쯤.

그 쯤 공원으로 나가보면 따뜻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그리고 뭔지 모를 누적함이 주는

그런 행복한 감정이 물밀려 들어온다.


불과 몇 달 전에 직장인 일 때만 해도 오후 3-4시는 지옥 같은,

그러니까 퇴근을 앞두고 '진짜 시간 안 간다' 이 타임이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커피를 하나 사들고 여유롭게 걷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 훌쩍 지나있다.

산책길 마주치는 이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내가 직장인 일 때 이들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특별함보단

그들도 바삐 사는 이들 중 한 명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자유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한량처럼 느껴지겠지만

집에서 논다고 해서 진짜 놀 수가 없더라.

집안일부터 시작해서 나름 취미생활을 즐긴다고 여기저기 하루에 스케줄 하나만 잡아도

하루는 바쁘게 지나가니까 말이다.




가장 좋을 때는 봄이다.

봄은 아침 점심 저녁 어느 타임이어도 좋지만

흩날리는 벚꽃 잎은 기다려주지 않기에

벚꽃 길을 따라 걸으며 내가 내년 봄에 다시 이 길에서 이런 여유를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진을 한 장 찍어 얄밉게 남편에게 보내본다.

'부럽지?'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저지른 ‘그냥’ 퇴사, 오히려 더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