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게 기대고 싶은 하루
"집에 가는 길에 로또나 한 장 사야겠어요"
점심 산책 길이었다.
오전 내내 업무에 시달리던 과장님이 사무실에 들어가는 길에 던진 한마디였다.
"과장님, 매주 로또 사세요?"
"그럼요. 로또만 되면... 로또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일 좀 그만하고 싶어요"
"1등 되면 뭐 하시게요?"
"집도 사고 차도 사고요."
"회사는 그만두시고요?"
"음... 그래도 회사는 계속 다니긴 할 것 같네요"
과장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잠시나마 상상의 세계 속에서 행복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산다.
단순 재미 이상이다.
지갑 속의 로또 한 장은 1g도 나가지 않는 작은 종이일 뿐이지만
그 종이는 일주일의 일상의 큰 희망이 된다.
그 희망은 표면적으로는 돈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행하는 노동의 대가로 우리는 돈을 받는다.
일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일이 주는 보상은 대부분 돈으로 주어진다.
어떤 이는 생계, 어떤 이는 자유, 어떤 이는 꿈을 위해 돈을 번다.
그렇지만 정말 많은 돈이 있다고 해서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돈은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문제 해결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제한이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내가 살 수 있는 것보다 값어치 높은 것들이 존재하고 돈은 또다시 돈을 부른다.
사실 나는 로또를 사본 적이 손에 꼽는 것 같다.
내가 로또를 사지 않는다고 하면 보통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물질적으로 여유(?)롭거나 그게 아니라면 5000원의 돈이 아까워서라고 보통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매달 대출 빚을 갚으며 알뜰하게 살아가고 있고 5000원이라는 돈이 내 일주일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로또를 사지 않는 이유를 밝혀보자면
나는 로또 1등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더 가깝게 말하자면 나는 로또 1등이 될까 봐 두렵다.
로또에 당첨되면 뭐든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집을 사던 차를 사던 더 좋은 집, 좋은 차가 계속 눈에 들어올 것만 같다.
당장 생계가 달린 문제가 있고 그게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로또 당첨이 하늘이 준 선물처럼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일상의 작은 행복은 금세 시들해지고 그 큰돈으로 뭔갈 채우고 나면 또 금방 허무해질 것 같기도 하다.
로또에 당첨된 이후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변화도 조금 두렵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른 이면을 보게 되고 실망하는 일이 있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결국 질문은 돌고 돌아서
진짜 돈이 많이 생기면 모든 게 해결될까 로 돌아온다.
매주 로또를 사며 오늘의 나를 위로하는 누군가도
로또 1등이 될 상상을 하며 지레 겁먹고 있는 나도
어쩌면 우리는 돈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열쇠라고 믿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로또 1등은 내 인생의 고달픔을 해결할 만능 키도 아니고
당첨된다고 해서 내가 걱정할 만큼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기대'라고 부르는 것들 중 큰돈을 가져다주는 하나일 뿐.
내 일상에 로또만이 내 기대가 된다면 로또가 내 일주일을 쥐고 흔드는 기분이 든다.
우리 일상에는 큰돈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작은 기대들이 숨어있다.
출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먹는 커피 한잔
더 이상 차갑지 않은 봄날의 바람
사랑하는 사람과 꼭 잡은 두 손 안의 따스함
피상적이고 현실성 없다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기대들은 이곳에 있지 않을까
이번주 로또 총판매금액은 1000억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 팀 과장님은 이번주도 로또를 살 것이고
나는 여전히 로또를 사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의 기대가 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로 채워지는 일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