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친) 할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어서 전화로 할머니 인터뷰해서 산 역사를 기록하라고 부추긴다. 가족사 남기기 프로젝트. 뭐 이런 차원인 듯. 앱으로 무료 통화가 안 되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는데 이모랑 할머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앱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보통 답이 온다. 근데 할머니랑은 이게 안된다.
주중에 노인 돌봄 센터에 가셔서 시간을 잘 못 맞추면 통화하기 힘들다.
이미 상대방의 일과를 꿰뚫고 있어야 연락하기도 쉽다는 말. 일과를 알려면 자주 연락해야 하고.
3-4번 시도 끝에 드디어 연결. 할머니한테는 안부인사가 필요 없다. 전화받는 목소리에 건강상태, 마음 상태가 훤히 보인다. 곧 돌아가실 분처럼 힘없는 "여보세요?"는 감기, 치아, 무릎 셋 중에 하나가 속을 썩인다는 이야기. 우렁찬 "여보세요?"에 내가 누구라고 답했을 때 목소리가 반 옥타브 올라가고 힘이 더해지면 만사형통이다. 전화 바로 끊어도 안부 다 확인한 셈이다.
뜬금없이 인터뷰하기가 멋쩍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작은 아버지, 고모, 사촌들 안부를 묻는다.
주중에는 돌봄 센터에서 드시고, 주말에는 주로 중국집에서 배달시켜서 장 안 본 지가 몇 달이라고 하신다.
내가 가면 주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씹기 쉬운 "곤약" (일본 말인 것 같은데 할머니한테 처음 듣고 먹어본 거라 우리말로 뭐라고 하는지 조차 모른다), 죽, 귤을 사 간다. 중국집 쿠폰을 모으시는데 내가 가서 거하게 시키면 쿠폰 많이 받는다고 좋아하시든지, 본인이 모아놓은 쿠폰으로 인심 쓰신다.
최근에는 혀가 아파서 고생하셨단다. 혀가 아프면 말하기도 먹기도 힘드니 이에 비하면 감기/치아/무릎 아픈 건 애교. 여태까지는 거동이 불편하고 기운 없는 게 문제였는데... 혀라니.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내 주변에 혀가 아팠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상상도 못 한 게 고장 날 수 있구나.
20분쯤 통화하자 할머니 에너지가 고갈됐는지 끊자고 하신다.
인터뷰 근처에도 못 가고 끊었지만 인터뷰 핑계로 통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