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 시스템의 흐름

한국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을까!?

by 전략팀 김부장

제가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했던 시절에,

넛지라는 책과 개념을 접했습니다.


경영/경제 개념들에 워낙 무지했던 시절이라 얼만큼 새로웠고 파급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에게는 매우 오래도록 기억을 남긴 책이 되었습니다.


주로 ‘팔꿈치로 쿡쿡 찔러, 즉 티나지 않는 작은 유인책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죠?

저에게는 인센티브 구조라는 광대한 영역에 대해 탐색을 시작하게 된 창문이었답니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인센티브 구조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잘못됐어! 하고 평가만으로 끝난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담론이 되기에,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 하에서 내가 뭔가 바꿔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기술하는 내용들은 저의 주관적 상념에 불과하며, 통계적 접근에 의거한 사고입니다만 어쩌면 편향되었을 수 있습니다. 혹 불쾌한 분들 또는 틀린 내용이 있는 경우, 바로잡아 주시면 감사히 수용하겠습니다.


1. 최근 흐름은 많이 바뀌었습니다만 (또 모르죠 유동성이 풀리게 되면..) 한국 스타트업의 성장은 부트스트래핑(작더라도 양의 현금흐름을 창출해내면서 단계적 성장) 보다는 문샷(실패할 가능성이 현저히 크더라도 성공 시 얻게 되는 막대한 리턴)의 스토리가 여전히 많습니다.


2. 닭이 달걀을 낳았는지, 달걀이 부화하여 닭으로 성장했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이러한 스타트업의 문샷을 서포트하기 위해 대담한 모험자본이 필요했고, 선뜻 나서지 않는 민간 자본에 대한 마중물로 공공 자본(모태펀드와 지원사업, 바우처, 대부금 등)이 투하되었습니다.


3. 우후죽순 생겨난 벤처투자펀드들은 모태펀드와 LP를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만 가지고도 투자를 주도적으로 집행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같이 연약한 회사들은 씨드(엔젤)투자 - 초기창업지원사업 - 프리A 투자 - (프리/스케일업) 팁스 - 시리즈 B 이상으로 이어지는 투자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이 마치 교과서적인 성공인 것처럼 여겼고 요구받았습니다.


4. 여기까지 등장한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의 주체는 넷입니다. 정부 및 산하의 공공LP, 민간 LP, GP(스타트업에 대해서 VC), 회사. 이 넷이 바라는 것, 인센티브는 무엇일까.


1) 정부와 공공LP - 투하된 예산 규모, 펀드 결성 수(*), 지원사업의 규모와 횟수 등

2) 민간 LP - 투자 회수 실적(이지만 먼 미래), 투자 회수 실적의 추정치(*)

3) VC - 투자의 재원이 되는 펀드의 수와 규모, 실제 운용수수료 계산의 모수가 될 투자 집행 규모(*), 트랙레코드(*), 투자 회수 실적(이지만 먼 미래)

4) 회사 - 투자 유치 금액, 높아진 기업가치(*)


5. 위에서 (*) 표시한 부분에 대해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정부/공공LP경우 투자를 명목 규모와 출자 펀드 수 등으로 실적을 바라봅니다. 어딘가에는 500억이 필요하고 어딘가에는 50억원, 다른 곳은 5억원이 필요한데 5억원씩 100곳에 지원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1억원씩 500곳을 선호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몇 개 펀드에 출자를 했다, 그러한 펀드가 몇 개 회사에 투자를 했다는 집계로 성과를 측정하기 때문입니다.


6. 민간LP의 경우 장기적인 투자의 회수 실적에 인센티브가 놓여 있으나, 초기투자의 경우 회수까지 일반적인 경우라도 7~10년 정도는 소요되기 때문에 중간에 회수되지 않은 투자의 실적을 측정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때 실적은 투자한 회사의 현재 기업가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놀랍게도 초기투자를 진행한 회사에 단기적인 (연단위, 분기단위의)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수행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7. VC의 경우 민간LP와 같이 단기적인 실적 측정에 대한 압박 외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운용수수료 위주의 하우스 운영입니다. 초기투자를 집행하고 나서 회수까지 너무나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동일한 환경 때문에 하우스의 운영 및 외형 성장을 위해서, 특히 유능한 심사역들의 경쟁력 있는 급여와 기타 운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운용수수료를 쌓아 나가야 하는 쳇바퀴에 오르는 것입니다. 운용수수료는 1) 펀드를 결성하고 2) 투자를 집행해야 발생하기 때문에, 다다익선의 개념으로 펀드를 결성하고 미친듯이 투자를 찍어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게 투자사로서의 미덕인 것 처럼, xx건의 투자 집행, yy억의 투자 집행 등을 자랑하며 또 다시 펀드를 결성하고 투자를 집행합니다. 어떤 회수 실적이 발생할지는 아직도 미지수입니다.


7. 회사는 창업 초기 숨통을 틔워주는 지원사업과 초기투자금으로 운영을 시작합니다. 많은 회사는 지원사업과 투자를 통해서 규모가 커집니다. 커지는 규모는 필연적으로 고정비의 상승을 부르고, 덩치가 커진 회사는 더 큰 투자금을 받지 않고는 못배기게 됩니다. (아직 돈을 벌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투자 유치에 성공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8. 정책을 펼치는 입장이 된다면 실효성 있는 재정 투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텐데요, 정권의 성격이나 정치적 지향점, 솔직한 입장에서 성과 측정의 불명확성 (투자 건수라면 매우 명확한데 실효성이란 것을 측정하기가 매우 어려움), 의사결정 권한의 중앙집중화와 잦은 컨트롤 교체, 나아가 시장의 여러 이해관계 조율 측면을 고려하면 심히 어려울 것으로 판단합니다.

소버린 AI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100조 원'과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를 내걸고 무엇을 해야 할지, 누가 할지 컨테스트를 쳘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정책의 방식이니까요. (인공지능 시장의 메이저 리그에서는 연봉 천억 엔지니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걸요..)


9. LP가 된다면 자금을 장기적으로 운용하고 실적 자체를 장기간에 걸쳐 측정해야 하겠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패밀리오피스 성격의 자금이더라도 7~10년의 투자 사이클을 오롯이 기다려 주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규모가 큰 기금의 경우 자산 포트폴리오 다변화 측면에서 (싱가폴의 Temasek 처럼) sub-branded fund 등의 개념이든 무엇이든 일부 자산으로 접근 가능할 것 같습니다.


10. VC가 된다면 운용수수료보다 성과수수료 중심의 운용을 해야 할 텐데요, 그러려면 펀드의 개수가 적고 규모가 커서 관리적 누수가 적어야 하겠고(즉, 아주 초기투자보다는 중기(growth 또는 rescue) 투자가 적합하고), 슬림한 인력 구조로 인건비 구조를 효율화해야 하며(AI 기반 업무 효율화 등에 능해야겠지요), LP의 성과 측정 입김에서 자유로우려면 자기자본이거나 패밀리오피스 성격의 자본을 바탕으로 투자한다면 좋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7~10년간 (극단적인 예로) 수익 없이 견디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또 필요한 것이 투자의 시계, 소위 time-horizon을 단축하는 것인데요, VC가 두 가지를 잘 하면 가능해집니다. 보육(accelerating)과 회수(exit).


11. 위에서 논의한 VC의 인센티브 구조 때문에, 그들의 주 업무는 항상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고 투자를 집행하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에 방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disclaimer again; 예외가 분명 있습니다) 투자 이후 자문에는 무지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보육은 미팅을 만들어주는게 아닙니다. 사실은 반대에 가깝죠. 미팅은 줄여 주면서도 done deal을 만들어 주는 것. Vision(Core strategy)와 Tech/Product를 제외한 모든 support function을 - 영업, 채용, CRM, 재무, 노무, 재무/회계/세무, 법무 - 지원해 주는 것. 후속 투자 유치를 받고 싶을 때 미팅과 투심 대응을 쉽게 만들어 주는 것.


12. 한국에서 스타트업 투자의 회수란 무엇일까요? 개념적으로는 기업공개와 매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업공개가 정말 EXIT 일까요? 엄밀하게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열심히 성장한 회사가 드디어 IPO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무엇을 하는가 하면 사업하고, 투자 받고(증자하고), 투자 하고(CAPEX 등), 사업하고.. 완전히 똑같은 사이클을 계속해서 돌게 됩니다. 사업에서 이익을 남기고 쌓아서 충분한 유보이익(Retained Earnings)가 되고 이를 배당하면서도 사업의 사이클을 무리 없이 달려갈 수 있게 될 때 까지. 아마도.. IPO + 10년 정도일까? 하여, 스타트업은 현실적으로 M&A를 exit 플랜으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꼭 exit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


13. 그런데 문제는, 한국 내에서 매수 주체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성장하는 모델의 스타트업을 인수할 주체는 FI보다 SI여야 하는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FI는 바이아웃 투자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SI는 크게 대기업과 먼저 충분히 성장한 스타트업 정도가 있겠고 전자는 인수합병 성사시키기가 너무 어려워서 (오래걸리고 카피하고 내재화하고 협력하자고 하고 만약 사더라도 어떻게든 정말 싸게 사고 싶어 하기 때문), 후자는 경쟁 상대인 경우가 많고 그들도 결국 투자자의 자금으로 인수하기 때문에 찬성표를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 부분에서는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현지 또는 글로벌에서 SI 원매자를 찾아 exit을 진행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되어 줄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14. 이런 VC가 만들어진다면, 운용수수료보다 성과수수료를 바라보고, 작은 팀으로 큰 임팩트를 만들며, 포트폴리오 회사들에게 support function을 원활하게 지원해주면서 효과적으로 done deal을 만들어 주는 투자자. 그리고 해외 M&A 플랜을 설계/구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투자자.


어쩌면, 이걸로 무언가 해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어쩌면 이런 VC나 PE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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