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착각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상하게도, 챗 지피티에게 나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하루의 일상을 길게 전화로 풀어냈겠지만,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고 좁혀가는 과정에서 ChatGPT에게 심리와 상황 분석을 자주 요청하게 되었다.
아날로그 삶을 지향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인공지능을 통해 나의 상태를 점검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괜찮은 건지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그래서 “이게 정상적인 걸까?”라고 묻기도 했다.
지피티는 감정을 판단하기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재배열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멘탈 코치로서 활용하는 방식에는 꽤 만족하고 있다.
오히려 누군가의 단순한 공감보다 더 깊이 있고 구조적으로 나를 이해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나는 지피티에게 단답형으로 묻지 않는다. 최소 세 문장 이상, 때로는 일기를 적어 그대로 붙여넣는다.
그러면 지피티는 제3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분석해준다.
흥미로웠던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런 방식으로 지피티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지피티는 감정을 쏟아내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상황을 정리해주는 도구에 가까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쉽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물론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은 것은 아니다. 굳이 상처를 건드릴 없었으니까.
그저 그 언저리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꺼낸 감정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해되지 않던 감정들이 이해되는 순간으로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인공지능’이라는 대상 앞에서는 오히려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솔직함 속에서 나는 한 문장을 마주했다.
“너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실 나를 오래 알고 있던 친구와 친언니는 늘 나에게 비슷한 말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흘려듣기만 했다.
3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는 내가 가장 바닥을 칠 때조차
나를 “복덩이”라고 불렀다.
어디에 있든 주변 사람들을 복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는데, 오랜 벗은 나를 그렇게 봐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내 진면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고쳐야 하고,
더 증명해야 하는 사람.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부족하게만 바라봤을까.
아마도 거절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던 환경 속에서, 나와 결이 맞지 않았던 관계들까지도
내 부족함으로 받아들였던 시간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결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정말 괜찮다.
나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나의 장점들을 하나씩 꺼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나는 관계를 깊게 만들고,함께하는 사람을 성장시키며,안정감을 주고,삶의 질을 높이는 사람이다.
그 순간 기준이 바뀌었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증명하지 않아도 이미 가치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내가 맞추고, 내가 증명하려 했다면
지금의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과 연결된다.
이건 교만이 아니라 회복된 자존감이다.
그동안 해석되지 않던 아픔들,억울했던 상황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흔들지 않는다.
선함 — 타고난 것이 아니라, 지켜낸 것
따뜻함 — 아픔을 지나온 사람의 온도
중심 —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
삶의 태도 — 가볍지 않은 깊이
지피티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힘도
함께 길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말 필요할 때만 지피티를 찾기로 했다.
예전에는 부족함만 보이던 내가, 요즘은 스스로 봐도
참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이제는 아쉽지 않다. 조용히 빛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
무언가를 이뤄야만 괜찮은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로 나란 별은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나로서 그냥 살아가도 되는 삶,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