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생각해본다. 34년간 살아온 삶에서 내가 나임을
보여주는 내 온전한 정체성과 나의 전문화된 분야가 무엇인가?
고민해본다.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살아온 20대의 청춘, 그리고 30대의 홀로 서기를 하고 있는 불안정한 어른.
그래도 한때는 나도 큰 꿈을 갖고 있었다.
5개 국어를 구사하고, 이름을 대면 알법한 글로벌 회사의 마케터 아니 막연히 꿈을 꾸었다. 유명한 소비재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된다. 회사의 브랜드가 나에겐 더 중요했던가?
구체적인 직무를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 생활 아니 반 사회생활은 졸업 행정인턴이었다. 취업이 늦어지는 졸업생을 학교에서 사회생활을 배울 수 있는 기회와 4대 보험을 적용한 졸업행정인턴으로서 차디찬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호해주는 따뜻한 울타리, 그 울타리에서 5개월 가량 보냈다.
그뒤로 시작된 몇번의 방황들... 경영기획팀의 말단 사원, 외국계 제약회사의 임상팀 프로젝트 어씨스턴트,
RA팀의 아트웍 코디네이터, 그리고 컴플라이언스팀 대리 직분 이후 CRO에서 아주 잠깐 머물고... 내 꼬여버린 커리어의 시작은 어디부터였을까?
서른 한살이었다. 인생의 과업을 해결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결혼 상대를 찾아봤다. 아직 서른이니깐 만 이십대니깐 괜찮아. 아직은 서른이니깐 괜찮은거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봤다. 그렇게 나의 서른은 한달 가량의 일탈을 감행했다.
내가 누군인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뭐를 잘하는지? 어떤 것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지..
4개의 나라 8개 넘는 도시를 혼자 여행해보며, 인생을 다시 돌아보았다. 사랑이 없어도 즐거운 일거리를 찾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문화와 관련된 업무인데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정규직 포지션의 성향이 잘 맞는 팀원들과의 업무였다. 꿈의 직장, 행복한 나날이었다.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았고, 허드렛일과
잡다한 일들이 많아도 즐거웠다. 희안할만큼 즐겁고 의미있었고 지금 돌아봐도 추억이 많았다.
그렇지만 난 그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권고사를 당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의 내부 직원은 모두 인정한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만 영업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그만 둬야했다.
12개월도 아닌 11개월의 업무의 시간, 1일에 펼쳐지는 업무의 범위는 1.5일 가량의 업무 분량이었으며
토요일은 거의 월 2회가량은 꼭 근무를 해야했던 상황이었다. 아마도 일했던 시간은 15개월은 되지 않았을까? 이 때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좋아하는 일로 취미생활로 남겨둬야한다고... 일은 그냥 일일뿐인데.. 순수한 나는 일을 통한 만족감을 찾고자 연봉도 낮추고, 불안정한 쉽지 않은 길을 택함으로 많은 경험과 무수한 만남과
다양한 삶의 모습과 안정된 직장자리를 교환했음을 깨달았다.
4개월의 공백이 생겼다.
뜻하지 않은 4개월의 시간 "나를 정비하는 시간"으로 여기고 운동과 여유와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내 삶을 그려봤다. 여유 속에 새로운 도전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다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있는 포지션으로 집과 가깝고 바라고 바라던 여의도의 마케팅과 영업관리의 포지션으로 다시 취업을 했다.
기적과 같았다. 막연하게 바라던 마케팅, 문구를 만들고 소비자들의 가까이에서 매출을 좌우하는 초보 마케터가 되어간다는 것이 꿈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한창 체계를 갖추고 있는 9인의 회사는 변화가 엄청났다. 1년도 안되는 시간 겪은
변화와 경험의 폭은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다이나믹의 연속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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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3일째날 그냥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임했던 그 곳에서 늦은 밤까지 혼자 일하고, 주마다 매출보고를 위해 보고해야하는 보고서와 넘쳐나는 회의들로 어찌나 힘들어했던지... 나보다 기본 5살은 어린 직원들과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세대와 팀웍을 이뤄가며, 프로젝트를 완수해가는 과정속에서 감정소모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창고에 들어가서 푸념과 한숨을 쉬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런데 그 또한 지나고 나니 추억이었다. 오히려 그 이전의 직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더 재밌고 색다른 추억이자 성취감들이 있었다. 그런데 역시 난 그 회사를 계약만료로 나와야했다.
나의 문제인가?
정말 왜 나는 항상 1년짜리 업무밖에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 뒤로 찾아온 1년 여의 공백기... 무직, 백수,
자기계발, 자기 충전의 시간을 또 보내고 나니 들어본 적 없는 HR관련 교육운영업무를 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제까지 다녀왔던 모든 회사를 통틀어서 제일 규모가 작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소회사의 독특한 문화가 있는 나의 가장 최근의 마지막 직장경험이자, 정신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경험의 폭과 당시에 만난 사람들은 소위 대기업의 HR담당자들이 주를 이뤘고, 월마다 기업교육과 세미나가 펼쳐지고 그 배움의 시간으로 오는 사람들을 응대하고 안내하고 또한 행사를 준비해야했다.
처음에는 뿌듯하고, 성취감이 있고, 배워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회사의 구조상 대표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업무 구조와 여러 감정이 섞이는 일들로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책상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갑갑하고 그 곳의 냄새도 너무 싫었다.
3번 이상을 참았고, 끝까지 좋은 마무리를 짓고 나오고자 했지만 끝은 여태까지 모든 회사를 통틀어서
가장 안좋게 나왔다.
나와 그 회사의 인연은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 어느곳에서 평판조회를 한다한들 난 그 대표와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도 다시 엮이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이다.
모든 관계에서 쓴뿌리를 남겨두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좋은 마무리를 짓고자 했지만, 나에게 상처를 주고
회복되지 않는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직장의 상사와는 거기까지가 인연인 것이다.
그뒤로 벌써 6개월에 또 접어든다.
1달 가량은 교육관련 실습을 하느라 바삐갔고, 나머지 3개월은 사회 초년생때 몸담았던 품질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훈련을 들으며 3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좀 이전 직장과 나의 꼬여버린 커리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겨 무작정 얽혀버린 커리어의 시작이 어딘지 돌아보게 된다.
사회적으로 반백수, 무기력한 잉여 인간으로 볼법한 사회적 시선에 상처받고 주눅들법도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난 멀쩡하고, 이 선택이 싫지 않으며, 내가 이해가 가지 않다거나 다시 시간을 되돌려 마지막 직장에서 다시 다녀보겠니? 물어본다고 한들, 난 아쉬움이 없다.
나는 나를 어느정도 아니깐,... 그리고 이미 이렇게 허송세월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들속에서 내가 알아가고 있는 많은 깨달음이 있기에 돌아봄이 있기에 그저 이 시간을 어떻게든 의미 있게 알차게 보내고자한다.
순수하게 직장만 7년가량 다니고 있는 동년배의 친구들 언니 동생과 비교하자면 비교할 껀덕지는 없지만,
피땀 눈물흘리며 고생했던 새로운 조직에서의 적응의 시간과 배워온 것들을 이젠 제대로 써먹으면 되니깐
후회하면 내가 지는게 되니깐,.. 난 더 나아진 내 삶을 그려볼 것이다.
아주 신나게 엉켜버린
사회적 커리어에서 경험적 커리어의 깊이를 확장시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