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증후군을 앓다가 한해의 절반에 걸친 지난 6월... 상반기를 접는 과정에서 6월은 2분기의 마지막이자
3월부터 내리 달리고,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늘 건강할 줄 알았던 내 체력도 떨어지고 몸도 축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진짜 연애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6월...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노로 바이러스성 장염이 걸려 5일 흰 죽만 먹으며, 내 생애 가장 괴롭고 아픈 한 주를 보내게 되었다. 출근길 전철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2호선 전철역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 같은 순간... 진짜 아찔한 그 순간, 출근을 포기하고 곧장 병원으로 가서 수액을 맞고 휴가를 내고 누워 있는데...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그렇게 가장 아픈 순간, 수시로 연락하며 나를 다독여주고 걱정해주는 남자 친구의 존재에 육체적으로는 아팠지만 심리적으로는 위로가 컸다.
그림1. 일러스트레이터 박지영 님 그림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면 그냥 또 그 세계가 전부인 것 마냥 즐거움과 행복이 삶의
전부인 것으로 살아가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결국 자신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더 큰 존재에 기대고 싶어지는 약한 존재인지라... 금방 기댈 대상을 찾는다. 내가 딱 그렇다. 속이 쓰리고, 기본적인 식욕을 채우지 못하니 다시 가장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하나님을 더 간절히 붙잡게 되었다. 오랫동안 덮어둔 성경을 읽으며, 그분을 간절히 붙잡고 어서 이 통증이 빨리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남들에게는 그냥 잠시 왔다가는 장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5일 가량 지속되는 그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30년 동안 그 고통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뒤늦게 들었다. 먹고 싶은 것을 크게 구애 받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씹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깨달으며, 아프기 전의 평범했던 그 일상으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다.
1인 팀으로 일하고 있다보니 백업이 없는 회사에서 1일 휴가만 낸 뒤 현기증이 나고, 두통이 너무 심한 상태로 4일 가량을 일을 하는데 진짜 기진맥진하여 온 힘이 풀려가면서도 일을 하며 그렇게 내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상황마저 어쩌면, 그냥 감사했다. 아파도 일을 하면서 아파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독종같기도 하고(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그래도 일에 아픔을 잠시 잊고 있는 모습도 신기했다.
그렇게 몸이 서서히 낫나 싶던 찰나에 회사의 타운홀 준비로 자잘하게 챙길일이 많은 상태에서 이번엔
냉방병이 왔다. 코로나가 의심될 만큼 목이 붓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콧물이 나고 기침이 너무 심해서 목소리가 변했고 누가 봐도 아픈 사람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제일 바쁜 한 주를 보내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그렇게 자주 안 아팠는데,, 단기간에 두 개의 병이 같이 오니 의심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나를 혹사시킨게 아닐까?"
일과 삶의 균형을 이뤄가겠다고 숱하게 이직하고선 결국 이 곳에 와서도 난 또 나를 혹사하고 있나?
난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예전의 체력을 믿고, 2.5인분의 일을 하는 1년이 되는 시점에 진짜 내 몸이 축나고 있구나.. 원래 큰 욕심 없이
선택한 자리였는데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를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깨닫는 과정에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들을 봤다.
다행이었다.
스스로를 지키며 일하라고.. 왜 나는 남들에게 관대하면서도 스스로에겐 배려하지 못했던가? 싶었다.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 좋다고 괜찮다고 말하고 분명히 잘못된 것이 없는데도 기존의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것을 주저하고,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호구 같은 내 모습을 발견했다.
호구? 어쩌면 난 자발적인 호구였나?
내가 손해 보는 삶을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오래전에 버렸지만, 손해 보는 것이 모든 관계에서 크리스천의 삶이라고 들어왔던 것이
작용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6월의 전부가 암울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몸이 약해지며 마음도 약해지는 때였고, 내가 어떤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난 침몰 될 것만 같았다. 그 침몰이 될 것 같은 순간 어쩌면 다시 신은 회복 탄력성을 갖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시는 지도 모른다.
스마트한 기버가 되는 것이,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고자하는 이에게 더 필요한 삶의 자세인데
나는 너무 호구 기버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이용해먹는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남 좋은 일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6월의 마지막날을 보내고 싶어졌던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12시 땡 6월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바이준 널 보내버리겠어... 속으로 외쳐보며, 6월의 마지막날을
보내고자 했다.
더 이상 호구로 살지 않기로 다짐하며, 주차난이 유독 심한 우리 동네에서 며칠 간 다른 동에 세워둔 차를
빼러 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차키만 들고... 차를 빼러 나갔다.
희안하게 앞차가 애매하게 이중주차를 해두었다. 양옆의 차 앞에 차가 세워져 있었고, 공간이 조금 부족해보이는데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 백미러가 잘보이지 않고 유리도 잘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무리하지 않았을텐데 그날은 유독.. 내 힘이 강했다. 조심조심 빼보자며 평소에 해보지 않은 무리를 하다가...
그 상황에서 내 감을 믿고 차를 빼는 과정에서 운전석쪽 옆 차와의 거리가 매우 좁았다. 설마 설마 하는데..
그만 옆차와 완전 닿았고, 이렇게 저렇게 차를 빼려고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 차의 범퍼가 떨어졌다.
차가 안좋아보여서 그냥 그런차인줄 알았는데 심지어 일본차..ㅠ
진짜 이렇게 어의없게 상대방 차의 범퍼가 뚝 떨어지다니... 딱 봐도 200만원 이상은 나올 거란 직감이 들었다. 폭우가 몰아치는 6월 마지막 날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점...
갑자기 온갖 서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그냥 견뎌왔던 모든 서러움이 폭발을 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냥 왜 자꾸 안 좋은 일이 연타가 오는 것일까?
왜 신은 자꾸 나를 이런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원망과 서러움에 진짜 마음 깊이 숨겨둔 본원의 문제가 다시 찾아왔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사실 아직도 그 답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삶 속에 알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 고난을 통해 연단을 받고, 나약한 자신을 바라보며
그 모든 섭리를 운행하시는 더 큰 존재를 기대게 된다는 것.
그리고 최악으로 보이는 그 상황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고난이기에 더 다행일수도 있다는 것을...
오히려 그 상황임에 감사하다고 조그맣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주는 축복이란 것을...
알 수 없이 찾아오는 고난을 통해, 오히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의 본심을 알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그 힘든 상황에서 그냥 바로 와준 남자 친구가 내 옆에서 나를 다독여주고 있으니.. 그 어려움의 시간 날 홀로 두지 않는 신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힘들고 지쳤던 유월을 보내고 맞이한 7월은 아침부터 심상치 않게 하늘이 예뻤다.
내내 쨍쨍 맑은 날씨의 파란 하늘보다 세차게 내린 비온 뒤의 푸른 하늘이 유난히 더 빛나보이는 것처럼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난 뒤의 내 삶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해지고 견고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었던 상황이 연달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감사하며 내 몫을 살아가고자 이렇게 기록해두는 나를 보니,
왠지 나의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더 정리되고 안정화되고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