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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omi Jul 07. 2021

별이 총총 빛나던 예제르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가까운 마을

 자그레브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끊었다. 월요일 오후여서 버스 터미널은 한가했다. 한국에서 출발 전 혹시 버스표를 못 구하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표 예약을 하지 못해 걱정했지만 자그레브 호스텔 직원이 좌석 현황을 보고 여유가 있다고 얘기해줘서 출발 당일 표를 끊었다. 버스는 쾌적했다. 성수기시작 전이라 좌석이 여유가 있었나보다. 만약 성수기였다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게 맞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자그레브에서 버스로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나른한 오후 무렵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입구 쪽에 도착했다. 자그레브에서 받은 행복 스파크가 엄청나, 명성이 자자한 플리트비체에 대한 기대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확실히 플리트비체는 자그레브와는 상반된 고요한 자연의 한가운데였다. 앞으로 남은 크로아티아의 도시들은 저마다 너무 멋진 곳이 될 것이기에 각자 저마다 어떤 매력이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Nacionalni park Plitvička jezera) 약 400년 전 까지만 해도 공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다가,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터키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경 문제로 군대의 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사람의 접근이 매우 어려워 ‘악마의 정원’ 이라고도 불리었으며, 때문에 많은 전설을 갖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1893년에 이 지역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생긴 이후, 1896년에 처음으로 근처에 호텔이 지어지면서 관광 지역으로서의 잠재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1951년에는 지형의 침식이나 훼손을 최소화하고, 관광 산업은 극대화 할 수 있는 국립공원의 적합한 범위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었다. 1893년 현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 중 한 곳으로, 매년 약 900,000명이 이 아름다운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인용 : 위키피아 플리트비체 역사 편


 위키피아의 설명은 매우 장황지만, 한국에서 내가 갖고 있던 플리트비체 이미지는 설악산 국립공원 혹은 오대산 국립공원과 동급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이 한 때는 '악마의 정원'이란 흉한 별명을 갖고 있고, 근현대에는 유고 슬라비아 내전이 시작된 곳이었다니 이곳의 이미지에는 "흑과 백"이 존재 하는 거 같다. 물론 지금이야 "요정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 매년 수 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관광지이지만 과거는 비운의 아픔과 상처가 있던 곳이라니 새롭긴하다.


  플리트비체의 일정을 두고 자그레브(zagreb)나 자다르(zadar)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당일치기로 둘러봐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국립공원을 당일치기로 둘러보기엔 좀 아쉬웠다. 최소한 하루는 있어줘야 그곳을 진짜 둘러봤다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플리트비체 예제르카에서 1박을 정해두었다. 숙소는 사실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울프하우스가 남아 있어 예약을 했다.

울프하우스 Jezerce 5/1, 53231,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아침 하늘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비춰진 플리트비체는 겨울이라 황량한 모습이었다. 내가 도착했던 6월말의 날씨는 완벽했다. 이번 여행에서 동행자 만큼이나 운이 좋았던 것은 날씨였다. 26일 중 비가 왔던 날이 5일이 안된다. 늘 새파란 하늘에 해가 쨍쨍 비추고 더위가 슬슬 지겨워질 무렵에는 비도 한번 씩 내려줘서 딱 적당했다. 플리트비체에서의 1박 2일간도 날씨 맑음 예정이다.





 혼자 뚜벅이 여행을 하는 배낭 여행객에게 크로아티아 여행은 여러모로 편한 곳은 아니었다. 동행자가 있었다면 렌트를 해서 함께 다니면 편했을텐데.. 1인 배낭여행가에겐 숙소를 찾고 이동하면서 어려움이 있긴 했다. 진짜 가족 여행으로 와도 좋을 곳이다.

 버스 정류소에서 울프하우스까지 택시를 탔다. 60쿠나를 냈다.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곳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2번 입구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이 곳에는 펜션 혹은 게스트하우스가 형성되어 있었다.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갔다. 키 하나로 별채 한 곳을 다 썼다. 생각보다 매우 넓어서 동행자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널찍한 침대, 깨끗한 화장실 그리고 앞마당의 벤치도 마음껏 쓰면 된다.


숙소에서

 관광보다는 현지인 일상에 젖어드는 여행이 좋아진 시점이었다. 숙소에 와서 짐을 풀고, 울프 아저씨네 뒷 마당 벤치에 앉았다. 장소 이동만으로도 이미 그날의 일정과 해야할 일은 했다.

 해가 늦게 지는 초여름이라, 짐을 내려 넣고 가벼운 차림으로 마을을 천천히 산책했다. 뒷마당에 고양이들이 잔디밭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아저씨 주변을 맴맴 돈다. 그리고 새들이 지저귄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관광지로만 알려진 곳인데 울프 아저씨에겐 일상이며 생활의 터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출가한 딸 내외가 손자를 데리고 와서 저녁을 함께 먹고, 침구를 빨아, 볕이 좋은 햇빛에 널어두는 집안일을 하는 하루 하루 살아가는 곳.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이란 도시는 놀 거리가 많고 밤을 새워 놀 수 있는 다이나믹한 곳이라면, 직장과 학업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바쁘고 번잡하며, 무수히 많은 타인들이 스쳐지나가는 외로운 도시일지도 모른다.


 내게 서울은 20대 이후 삶의 터전이 되었지만, 마음 한 곳에는 늘 유년 시절 여유 있게 살던 고향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바쁜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루튼하지 않은 삶이 오히려 낯선 곳이 서울이었다. 전철에 앉으면 졸기 바쁘고, 신도림역에서 환승할 때 눈을 감고 전철역을 가득 메운 사람을 지나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십년을 넘게 살아가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 오니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낯설어 보인다.  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는 그 숨가쁜 생활에 마음이 답답하고 응어리지는 거 같았는데, 이 낯선 장소에서 그때의 나를 돌아보니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행복"을 찾고 있었구나 싶었다.  힘듦이 있어야 그 힘듦이 지나가고 난 뒤의 감사함을 찾게 되나보다. 늘 여유있게만 살아갔으면, 이런 여유가 좋은지도 몰랐을거 같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주변에 자리잡은 마을은 영락없는 평화로운 산속 마을이었다.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는 고요함이었다. 산속이라 공기도 정말 좋았다. 밤에 큰 숙소에서 도무지 잠이 잘 오지 않아 잠시 밖으로 나갔다.


출처: pixabay  이렇게 많은 별까지는 아니지만, 밤하늘의 별이 많긴 했다.

 밤하늘을 기대하며 현관을 열고 나와 마당에 앉았다. 진짜 총총 빛나는 별이 보인다. 별이 너무 잘 보여서 놀랐다. 서울에서는 불빛에 가려져  볼 수 없던 별들이 플리트비체의 하늘에선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깊은 산속이라 풀벌레 소리와 부엉이 소리도 들렸다. 이곳이 진짜 플리트비체 맞아? 사진으로 봤던 장소는 청록색의 호수가 있는 풍경만 봤는데, 1박을 하니 플리트비체에 잠잠히 깔린 밤을 느껴본다. 무서운 밤이 아니었다.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신선한 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자연과 제일 가까이 있다고 느껴진 밤이 바로 그날 밤이었다.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언젠가 만나게 될 소울메이트도 생각나는 그런 밤이었다.  나중에 그들과 다시 이 곳에 렌트해서 온다면 진짜 행복하겠다. 그런 날을 상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https://youtu.be/KFGzf7OBPDk  2016년도에 만들어둔 여행 동영상- 플리트비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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