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니아누스의 궁전이 있는 스플리트에 왔다. 전날 플리트비체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너무 고단하여, 바깥 풍경을 보지도 못한 채 깊은 잠이 들었다. 자다르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환승을 해야 한다고 해서 짐을 내려 대기를 한 뒤 환승 버스로 갈아탔다. 스플리트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우버를 타고, 숙소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갔다.
숙소에서 봤던 또 오해영 마지막 회
사실 숙소의 상태는 제일 낡았고, 가정집에 가까웠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매우 쾌활하지만 담배를 많이 피워서 집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는 점이 제일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열쇠로 문을 열 때마다 손이 정말 아팠다. 손잡이가 헛돌아서 손바닥이 빨갛게 변하고 쇠냄새가 났다.
럭셔리한 여행의 끝판왕이 될뻔한 스플리트였지만 사실 숙소는 여정을 통틀어 거의 하위였다. 가격대도 평균 숙박 비용에 비해 싸지 않았지만, 관광지로 갈수록 좋은 숙소를 기대하는 건 사치였던가? 숙소를 옮기고 싶어 작은 방에서 내내 숙소 검색을 했다. 그러다 그냥 같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먹기로 나를 설득했다. 단 하루 머무는 곳이더라도 그곳의 숙박 상태는 그 도시의 인상을 바꿔놓을 만큼 나에겐 중요한 부분이었다. 일정과 맛집 검색을 덜하더라도 숙소 검색은 매우 디테일하게 알아보는 나였는데 이 곳의 상태는 아쉬웠다. 그러나 이미 숙박비도 다 지불한 상태였다. 숙소의 상태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좋지 않지만 나는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숙소를 옮겨서 몇 만원 가량의 손해를 보는 게 합당한가? 아니면 그 돈으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어떨까? 나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냥 비용을 더 지불해서 숙소를 바꾸기 보다 오히려 그 돈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기로 선택했다.
아침 9시 무렵의 스플리트 구시가지 주변
다음날 아침 일찍 깼다. 우선은 숙소를 벗어나, 스플리트의 아침을 누려보고 싶었다. 여행 내내 안 입었던 여름 원피스를 꺼내 입고, 자그레브에서 산 연두빛 큰 귀거리를 걸고, 거리로 나왔다. 태양이 눈부셨고, 스플리트는 하얀 대리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서야 비로서 스플리트를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스플리트 구시가지
로마 황제가 사랑했던 도시라고도 하는 스플리트, 실제로 아드리아해를 끼고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는 마주보고 있다. 두 나라의 분위기는 매우 비슷한데, 크로아티아가 더 정갈하고, 깨끗한 거 같다.
리바 거리의 느낌 그리고 5년전 필자 :) ㅎㅎ
밝은 햇살을 쐬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고 있자니, 모든 게 괜찮아졌다. 그런데, 후미진 곳에 깡마른 고양이들이 너무 자주 눈에 띈다.결국 근처 슈퍼로 가서 고양이 사료를 샀다. 내가 여기에 머물 며칠만이라도 이 지역 길냥이들의 배를 채워주고 싶었다. 공터에 사료를 줬더니 1마리가 와서 먹었고, 또 다른 애들이 와서 점점 그 구역의 고양이들로 가득 찼다. 7마리 가량 모여들었나?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봤다. 어차피 3일간만 할 수 있는 스플리트 길냥이들에게 할 수 있는 호의였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모여든 사진은 차마 담을 수 없었다.. 내가 스플리트를 떠나도 그 냥이들은 왠지 그 자리에서 먹이를 기다릴 것만 같아서 떠나는 날 괜히 미안하고 더 슬펐다.)
숙소에 대한 언짢았던 마음이 밝은 햇살을 쐬는 시간에 비례하여 사라졌다. 공터를 가득 메워 사료를 먹고 있는 냥이들을 보고 있자니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신 맛집으로 가는 길 아기자기하게 꾸민 카페에 들어가 맛있는 당근 케익과 커피를 시켜 앉고 보니 괜찮아졌다. 무엇보다도 밝은 태양아래 잘 나온 사진들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다.
스플리트에서 이제껏 해보지 못한 관광을 즐기고자 노력했다. 라이딩, 스노쿨링, 바다 수영, 보트 타기 여러 액티비티를 즐겼지만 기억에 남는 세 가지만 남겨본다.
첫째, 디오클레티니아누스 궁전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바위에 앉아 있던 시간.
로마의 숨결이 느껴지는 스플리트의 초여름 밤. 무장해제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여유를 즐기던 시간에 함께 동화된다. 꼭 다시 이곳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오리라!
둘째, 아드리아해 보트 투어를 팔던 아주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함께 찍은 사진
보트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서, 갈등하고 있는 나에게 보트 투어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들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게 진짜 사실인지 아닌지는 사실 모른다. 그렇지만 그 순간만큼은 솔깃했다.
인생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어떤 일을 선택해서 후회하기보다는 해보지 않으므로 후회를 더 많이 해! 뭐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거든!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선택을 한번 해봐~~~~
셋째, 보트 투어를 하며 봤던 아드리아 해의 다양한 얼굴
런던 언니들과의 잉글리쉬 토킹 그리고 올리브 정원에서 함께한 만찬
밀리나 섬의 잔잔한 바닷가, 아드리아해의 거친 파도
빠른 스피드로 바다를 가르며 가던 그 시간 엄청난 통쾌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날의 바다는 정말 새파랗고, 구명 조끼를 걸치고 보트 손잡이 하나에 의지하여 엄청난 스피드의 보트를 탔다. 인근 밀리나 라는 섬으로 가서 스노쿨링을 하고자 했지만, 성게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수영을 할 수 없었고, 대신에 런던 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멋진 영국 발음을 들으며, 진로와 인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간 사람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저녁을 먹고, 선착장으로 돌아가던 길 밀리나 섬에서
저녁 8시 30분, 밀리나 섬에서의 일몰
오후 2시 30분에 보트를 타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스플리트 항구로 다시 돌아왔는데,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보트 비용으로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 곳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없다. 여행 일기에 원래는 세세한 일들도 다 기록해두었는데, 보트 투어 비용은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인다. 대략 8~9만원 들었던거 같다. 그 때 그 돈을 아꼈다고 여행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보트 투어를 하길 잘했다.
스플리트 항구로 돌아가던 길 저녁 8시 30분을 훌쩍 넘긴 시간 2016년 7월 1일 저녁